새벽이슬묵상

(화) 요한계시록 1:1-8 /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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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44회 작성일 26-06-09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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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아멘, 아멘.” 요한계시록의 첫 문장을 마주하는 순간, 밧모섬에 갇혀 있는 사도 요한의 고독과 로마 제국의 압제 아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들고 살아가던 성도들의 눈물이 함께 떠오릅니다. 이 책은 단지 미래의 사건을 기록한 신비로운 예언서가 아니라, 고난 가운데 있는 교회를 향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위로이며, 환난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도록 붙드시는 은혜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두려움으로 읽히는 책이 아니라, 은혜와 평강으로 시작되는 책이며, 성도는 이 말씀 앞에서 “아멘”으로 응답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 역시 동일한 현실 속에 있습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믿음을 지키는 싸움은 여전히 치열하며,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소망은 지금도 동일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요한은 이 책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선포하며 시작합니다(1).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의 중심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이 책의 중심은 재앙도 아니고, 상징도 아니며, 어떤 신비로운 비밀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계시의 주체도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계시의 내용도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계시의 목적도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읽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고, 더욱 온전히 신뢰하며, 더욱 간절히 사모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해석은 결국 사람을 중심에 두게 되고, 그 결과 계시는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주장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정통교회의 해석과 신천지의 해석은 분명히 갈라집니다. 신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특정한 한 사람이 받아서 해석해야만 알 수 있는 비밀처럼 주장하며, 자기들의 교주만이 그 계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통교회는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 요한에게 주신 계시는 이미 교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어졌으며, 성령의 조명 아래 성경 전체 안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떤 개인이 독점할 수 있는 비밀 문서가 아니라, 교회가 함께 읽고 듣고 지켜야 할 공적인 말씀입니다. 계시를 독점하려는 시도는 결국 사람을 높이는 결과를 낳지만, 참된 신앙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입니다.

또한 요한은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이라고 말합니다(1).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이 인간의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한 미래의 세부 정보를 제공하는 책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선언이며, 그 성취가 결코 지연되지 않는다는 약속입니다. 여기서 ‘속히’라는 표현은 인간의 시간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시간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이 말씀은 지금의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다는 확신이었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에게도 동일한 위로로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그 과정 속에서 교회는 결코 버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천지는 이 표현을 자신들의 시대와 조직에 억지로 끼워 맞추며,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특정한 지도자의 등장 이후에 문자적으로 실현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정통교회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초대교회로부터 주님의 재림에 이르기까지 교회 시대 전체에 걸쳐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는 이 말씀을 통해 깨어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도록 부름받습니다. 그러므로 ‘속히’라는 표현을 특정 집단의 역사에만 가두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4). 이는 이 책이 단순한 묵시적 기록이 아니라, 실제로 고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교회를 향한 목회적 권면임을 보여 줍니다. 당시 성도들은 로마 제국의 권세 아래에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들에게 현실보다 더 큰 하늘의 시선을 보여 줍니다. 이 땅에서는 교회가 약해 보일지라도, 하늘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다스리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중심은 공포가 아니라 소망이며, 절망이 아니라 인내입니다. 성도는 고난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는 말씀은 이 책의 목적을 더욱 분명하게 합니다(3). 복은 비밀을 아는 데 있지 않고,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데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이 말씀이 예배 가운데 낭독되었고, 성도들은 함께 듣고 순종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교회를 떠나 개인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책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경 전체의 빛 아래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말씀은 공동체 안에서 바르게 해석되고 순종될 때 생명의 열매를 맺습니다.

신천지는 이 구절을 자신들의 교리를 따르는 자들만이 복을 받는다는 주장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그러나 정통교회는 복의 기준을 특정 단체에 두지 않습니다. 복은 성령 안에서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모든 성도에게 주어집니다. 요한계시록을 지킨다는 것은 특정 조직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로 구속받은 자답게 믿음과 거룩함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어 삼위일체 하나님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라는 표현은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키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은 성령의 충만한 사역을 나타내고, 이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선포는 은혜와 평강의 근원이 누구이신지를 보여 줍니다(4-5). 요한계시록은 두려움이 아니라 은혜와 평강으로 시작됩니다. 이는 성도가 먼저 붙들어야 할 중요한 진리입니다. 환난을 바라보기 전에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며, 현실의 어려움보다 하나님의 주권을 먼저 붙들어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도 신천지는 하나님의 자리를 흐리게 합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로 보지 않고 인간적인 해석으로 끌어내립니다. 그러나 정통교회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합니다. 재림은 어떤 인간의 사역으로 대체되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시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인간에게 돌리는 해석은 결국 교회를 미혹하게 됩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충성된 증인”이라 소개합니다(5).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증거하시며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또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신 이”라고 하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음을 선포합니다(5). 그리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다고 말하며, 세상의 모든 권세 위에 계신 주님을 드러냅니다(5). 당시 로마 황제가 절대 권세를 행사하던 시대에, 참된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한 이 말씀은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권세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주님의 통치가 참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한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찬양합니다(5-6). 교회는 스스로 세워진 공동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공동체입니다. 성도의 정체성은 어떤 조직이나 지식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에 있습니다. 신천지는 이것을 자기 집단에 속한 자들만의 특권처럼 왜곡하지만, 정통교회는 모든 믿는 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요한은 이어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라고 선포합니다(7).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초림 때에는 낮아지심으로 오셨으나, 재림 때에는 모든 사람이 보게 되는 영광 중에 오십니다. 이 재림은 은밀한 사건이 아니라 모든 눈이 보게 되는 분명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을 특정 집단의 내부 사건으로 제한하는 해석은 성경과 맞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주님의 재림을 보게 될 것이며, 그 앞에서 모든 무릎이 꿇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선언하십니다(8). 역사의 시작과 끝이 모두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두려움 속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주권 안에서 소망을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은 하나님께서 완성하십니다.

결국 요한계시록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끕니다. 환난 가운데서도 주님을 바라보게 하고, 두려움 속에서도 “아멘”으로 응답하게 합니다. 성도는 비밀을 좇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교회는 이 말씀 앞에서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심이시며, 그분이 우리의 은혜와 평강이 되십니다. 그리고 그 은혜와 평강은 고난 속에서도 결코 끊어지지 않으며, 끝까지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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