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금) 요한계시록 5:1-14 / 승리하신 어린양 예수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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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1건 조회 33회 작성일 26-06-19 05:47

본문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2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4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7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요한계시록 5장은 하늘 보좌의 환상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구속과 심판의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사도 요한은 다시 “내가 보매”라는 표현으로 시작하며, 깊은 갈망과 집중 속에서 주님의 계시를 바라보고 있음을 드러냅니다(1). 그 시선은 자연스럽게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 오른손에는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습니다(1). 오른손은 성경에서 언제나 주권과 능력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그 두루마리를 들고 계신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권자이시며, 모든 미래의 결정권이 그분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 두루마리는 안팎으로 글이 기록되어 있었고, 일곱 인으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습니다(1). 안팎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그 내용이 완전하며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임을 의미합니다. 또한 일곱 인으로 봉인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열 수 없는 완전한 비밀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구약의 선지자 에스겔이 본 두루마리에도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처럼, 이 두루마리 역시 심판과 구속의 경륜이 담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겔 2:9-10). 이후 이어지는 재앙의 전개는 이 두루마리의 인이 하나씩 떼어질 때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심판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두려움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완성과 승리의 길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때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칩니다.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고 묻습니다(2). 이 질문은 온 우주를 향한 선언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그 질문 앞에서 하늘과 땅과 땅 아래를 통틀어 누구도 합당한 자가 없었습니다(3). 아무리 지혜롭고 능력 있는 존재라도 하나님의 계획을 열어갈 자격을 가진 이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천사의 질문은 인간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을 이루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완성할 능력도 없는 존재입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요한은 크게 울게 됩니다(4). 이 울음은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의 절망을 표현한 것입니다. 만일 이 두루마리가 열리지 않는다면, 구속의 계획도 이루어질 수 없고, 하나님의 뜻도 드러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울음은 인간의 무력함과 죄의 깊이를 드러내며, 동시에 참된 소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출발점이 됩니다.

그때 장로 중 한 사람이 요한에게 “울지 말라”고 합니다(5). 절망 속에서 울고 있는 요한에게 들려오는 이 음성은 단순히 위로의 메시지가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승리에 대한 선언입니다.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5). 창세기에서 예언된 유다 지파의 사자와 이사야가 말한 다윗의 뿌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창 49:9-10, 사 11:1). 그분께서 이미 이기셨기 때문에 두루마리를 펼 자격이 있으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승리는 세상의 방식과 전혀 다릅니다.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승리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이루신 승리입니다. 죄와 사망과 사탄을 이기신 그 승리는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신 완전한 승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임을 당하심으로 패배하신 것처럼 보였으나, 바로 그 십자가를 통해 죄의 권세를 무너뜨리시고 부활로 생명의 승리를 확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승리는 인간의 능력이나 공로가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구속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승리입니다.

그러나 신천지는 이 승리의 주체를 왜곡하여 특정 인물에게 돌립니다. 그들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단지 예언 속에 등장하는 상징적 존재로 축소시키고, 그 예언의 실체가 자신들의 교주라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는 과거에 구속 사역을 이루신 분으로 제한하고, 계시록에서 인을 떼고 구원을 완성하는 역할은 교주가 대신한다고 가르칩니다. 심지어 어린양이 두루마리를 받아 그것을 교주에게 전달하여 계시를 풀게 한다는 식의 해석까지 덧붙이며, 구속과 계시의 중심을 인간에게로 옮겨 놓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완전성을 부정하고, 구원의 주권을 인간에게 귀속시키는 심각한 오류이며, 복음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왜곡된 가르침입니다.

요한이 다시 바라보았을 때, 그가 본 것은 사자가 아니라 어린양이었습니다.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양”이 서 있었습니다(6). 이 장면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사자의 위엄과 어린양의 희생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하셨지만, 동시에 살아 계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일곱 뿔은 완전한 권세를, 일곱 눈은 온 세상을 통찰하시는 전지하심을 나타냅니다(6). 이 눈은 하나님의 일곱 영과 연결되어, 성령의 완전한 사역을 보여줍니다. 그 어린양이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십니다(7). 이는 하나님의 구속과 심판의 계획을 실행할 권세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모든 역사의 주권이 어린양에게 위임된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구속 사역이 완전히 인정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이 장면을 본 하늘의 존재들은 즉시 반응합니다. 네 생물과 스물네 장로가 어린양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8). 그들은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향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이는 성도의 기도가 결코 헛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 온전히 상달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억하시고 받으십니다. 또한, 그들은 새 노래를 부릅니다(9). 이 새 노래는 새로운 곡조로 된 것을 말씀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감격에서 나오는 찬양을 의미합니다. “죽임을 당하사 피로 사람들을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다”는 고백은 복음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9).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속하게 되었음을 선포하는 노래입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10). 이는 단지 신분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존재로서의 새로운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신천지는 이 새 노래를 자신들의 교리 해석으로 바꾸어, 특정 인물의 가르침을 따라야만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이 새 노래를 계시록에 대한 자신들의 해석과 교주의 설교 내용으로 규정하며,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소속되어야만 참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복음의 보편성을 부정하고, 구속의 은혜를 특정 집단에 제한하는 왜곡된 해석입니다. 성경은 모든 민족과 백성에게 열린 구원을 선포하며,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는다고 분명히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특정 조직과 가르침에 종속시키는 이러한 주장은 복음의 본질을 흐리는 심각한 오류입니다.

이어서 요한은 수많은 천사의 찬양을 듣게 됩니다.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11). 그들은 큰 음성으로 외칩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라고 선포합니다(12). 이는 어린양이 모든 영광을 받으실 유일한 분이심을 선언하는 우주적 찬양입니다. 더 나아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함께 찬양합니다(13). 모든 존재가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전 우주적이며, 모든 피조물이 그분을 경배하게 될 것을 보여줍니다. 예배의 중심은 사람이 아니라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신천지는 이 찬양의 대상을 왜곡하여, 인간 지도자를 중심으로 해석하며 그에게 권세를 돌립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우상화이며, 성경이 말하는 예배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과 어린양께만 속합니다.

마지막으로 네 생물이 “아멘”으로 응답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합니다(14). 이 장면은 예배의 완성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은, 궁극적인 예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한계시록 5장은 우리에게 분명한 진리를 선포합니다. 구속과 심판의 역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달려 있으며, 그분만이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없으며, 어떤 존재도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어린양을 향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그분께 상달되며, 우리의 찬양은 그분께 드려져야 합니다. 세상의 혼란과 환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승리하신 어린양께서 보좌에 앉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소망이시며, 그분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그 어린양께 드려지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어린양을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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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스님의 댓글

민스 작성일

샬롬
♡ 이옥희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믿습니다.
지금까지  기쁠때나 슬플때 마음이 곤고하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방향을 잡지 못할때도
주님은 항상 함께 하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나의 필요만을 채워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주님이 주신 은혜로 성령의 음성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순종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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