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요한계시록 11:1-13 / 승리는 고난을 통해 이루어진다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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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1건 조회 42회 작성일 26-06-30 05:37

본문

 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2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5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7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8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13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요한은 이제 하나님께로부터 지팡이와 같은 갈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갈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는 명령을 듣습니다(1). 이는 단편적인 공간의 측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말씀의 기준으로 구별하시고 보호하신다는 깊은 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갈대를 가지고 성전을 측량하던 장면처럼, 하나님께서 교회의 거룩함과 신앙의 진실함을 살피시고, 참된 백성을 구별하시는 행위를 상징합니다(겔 40:3). 그러므로 측량은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말씀을 기준으로 한 영적 분별이며 하나님의 주권적 보호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하십니다(2).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2).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한 긴장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지만, 동시에 그들이 세상 가운데서 고난을 겪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성전 안은 보호되지만 바깥은 짓밟힙니다. 이는 교회의 불안정을 말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고난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마흔두 달이라는 기간은 다니엘서에서 말하는 한 때 두 때 반 때와 동일한 상징적 시간으로, 교회 시대 전체를 가리키며, 그 기간이 곧 고난의 시간임을 나타냅니다(단 7:25).

더 나아가 성전 바깥 마당이 이방인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교회가 세상과 완전히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여전히 세속적 권세와 맞닿아 있는 현실 속에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외적으로는 핍박과 침해를 경험할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 측량하신 영역 안에서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이중적 구조를 지니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참된 성도를 영적으로 보호하시되, 동시에 그들을 통해 믿음의 정금과 같은 순수함을 이루시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신다는 구속사적 섭리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정통교회는 이 성전을 특정 건물이나 조직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 곧 교회 공동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들이 측량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참된 성도를 말씀의 기준으로 분별하시고 지키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외형적 소속이나 제도적 구조가 아니라,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관심과 보호의 대상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측량은 구원의 범위를 제한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교회의 거룩성과 신실함을 드러내는 영적 분별의 행위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신천지는 이 본문을 왜곡하여 성전을 자신들의 조직, 곧 신천지 집단 자체로 규정하고, 측량을 자신들의 교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더 나아가 지팡이 같은 갈대를 신천지 초기 형성 과정에서 관여하였던 특정 인물로 동일시하며, 그 인물을 통해서만 참된 측량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성전 바깥 마당을 자신들이 떠난 기존 교회, 이른바 ‘첫 장막’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배도한 집단으로 단정합니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이방인을 불신 세력으로 보는 문맥을 무시하고, 정통교회를 배도의 대상으로 바꾸어 해석하는 심각한 왜곡입니다. 결국 이러한 해석은 성경의 보편적 교회 개념을 무너뜨리고, 구원을 특정 조직과 인물에게 종속시키는 배타적 구조를 형성하는 오류라 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하나님께서는 두 증인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예언의 권세를 주십니다(3). 그들은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 동안 예언하게 됩니다(3). 굵은 베옷은 회개를 상징하며, 이들의 사역이 심판을 선언하는 동시에 회개를 촉구하는 사역임을 보여줍니다. 두 증인은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로 불리며, 이는 하나님 앞에 서서 빛을 비추는 존재를 의미합니다(4). 스가랴서에서 성전을 재건하던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이 하나님의 영으로 세워졌던 것처럼, 이 두 증인 역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워진 존재입니다(슥 4:6).

정통교회는 이 두 증인을 특정한 두 사람으로 보지 않고, 교회 전체가 감당하는 복음 증거 사역의 상징으로 이해합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증인의 공동체이며, 이 사역은 종말까지 계속됩니다. 그러나 신천지는 이 두 증인을 특정 인물, 곧 자신들의 지도자인 교주와 그를 돕는 자로 제한하여 해석하며, 이들이 계시록의 예언을 실체로 이루는 중심 인물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두 증인의 예언 사역을 자신들의 조직 활동과 동일시하고, 이들을 통해서만 참된 계시가 전달된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성경의 상징을 개인에게 적용하여 계시를 사유화하는 것으로, 교회의 보편성을 무너뜨리고 인간을 계시의 중심에 두는 심각한 왜곡입니다.

두 증인에게는 놀라운 권세가 주어집니다.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원수를 삼키고, 하늘을 닫아 비가 오지 못하게 하며,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칩니다(5-6). 이는 모세와 엘리야의 사역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으로,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는 자를 어떻게 보호하시고 권세를 주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권세는 단순한 능력 과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심판의 현실성을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그러나 신천지는 이 권세를 모두 비유적으로 축소하여, 단순히 말씀을 전하는 행위나 교리를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심지어 하늘을 닫는다는 것을 자신들의 집단 외에는 말씀이 없다는 주장으로 연결시키기도 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본문이 말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심판의 실제성을 약화시키며, 결국 자신들의 조직을 중심으로 모든 의미를 재구성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두 증인의 사역은 결국 순교로 이어집니다. 그들이 증언을 마칠 때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이 그들과 싸워 이기고 그들을 죽입니다(7). 이는 교회의 사역이 세상에서 언제나 환영받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핍박과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영광스러운 순교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씀처럼, 그들의 죽음은 생명을 낳는 씨앗이 됩니다(요 12:24).

신천지는 이 죽음을 실제 순교로 보지 않고, 사명을 박탈당하는 영적 상태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시체가 드러나고 사람들이 그것을 보며 기뻐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8-10). 이는 역사적이고 실제적인 사건을 의미합니다. 이를 조직 내부의 사건이나 권력 변화로 해석하는 것은 본문의 의미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해석은 순교의 신앙적 의미와 복음의 증거성을 약화시키며, 교회의 고난과 승리를 인간 중심의 사건으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두 증인의 죽음 이후 세상은 기뻐하며 서로 선물을 주고받습니다(10). 이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미워하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 그들이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11). 이 부활은 하나님의 최종 승리를 선포하는 장면입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 같았던 사역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일어납니다. 

이는 에스겔서의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처럼 하나님의 생기가 임할 때 죽음도 생명으로 전환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진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생기로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을 보여줍니다(겔 37:5). 또한 그들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은 그리스도의 승천을 연상시키며, 하나님의 백성이 결국 승리하게 될 것을 보여줍니다(12).

그러나 신천지는 이 부활을 자신들의 조직 형성과 연결하여, 특정 인물, 곧 교주가 과거의 어려움과 수감 이후 다시 활동하며 신천지를 세운 사건으로 해석합니다. 이는 계시록의 장엄한 구속사적 사건을 인간 조직의 역사로 축소시키는 것으로, 성경의 본래 의도를 크게 훼손하는 해석입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해석은 부활이라는 하나님의 초월적 능력을 한 인간의 삶의 과정에 치환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의 소망을 왜곡하고 신앙의 중심을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로 돌리게 만드는 심각한 오류를 낳습니다.

마지막으로 큰 지진이 일어나 성의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죽게 됩니다(13).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실제로 임하는 장면입니다. 그 가운데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13). 심판은 회개를 이끌어내고 다시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교회의 길은 영광의 길이 아니라 고난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을 통해 자신의 백성을 더욱 정결하게 하시고, 결국 승리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두려워하기보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이 교회를 짓밟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서도 자신의 백성을 지키십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죽음마저 이기게 하십니다. 승리는 고난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로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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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강진프라하님의 댓글

강진프라하 작성일

샬롬!! 김 숙자입니다

참된 성도 한사람 한사람을 구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앞에 늘 작은 나를 보게 하십니다!!

정집사가  천국으로 가고나니
가족 가운데, 형제가운데, 교회가운데, 이웃들 가운데
믿음의 선한 영향력과 뒷모습의 아름다운 향기가 진하게 남겨진듯합니다!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서 생명을 품는 씨앗이 될때에 많은 열매로 영광올려드릴수있다는것을
가장 가까이서 보게 하셨으니

지금의 고난과 아픔이 성숙한자리로 이끌어내시기위함임을 묵상가운데 깨닫게 하셨으니 더 기도하며, 겸손과 순종의 삶으로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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