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수) 요한계시록 11:14-19 /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세상의 나라들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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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1건 조회 49회 작성일 26-07-01 04:20

본문

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16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7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두 번째 화는 지나갔고, 셋째 화가 속히 이를 것이라는 엄숙한 선언과 함께 하늘의 역사는 마지막 절정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증인의 사역을 통하여 세상 가운데 회개를 촉구하셨고,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큰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칠천 명이 죽임을 당한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세상을 향한 경고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완고함을 내려놓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는 이제 일곱째 천사의 나팔을 통하여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라고 하시며, 역사의 마지막 결론을 선언하십니다(15).

사람들은 세상 권세가 영원할 것처럼 살아갑니다. 왕국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고, 인간의 문명은 영광스럽게 포장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의 나라가 결국 하나님의 통치 아래 들어가게 될 것을 선언합니다. 여기서 “세상 나라”는 하나님 없이 세워 온 모든 질서와 권세를 의미합니다. 헬라어 원문에서는 “그리스도의 나라” 뒤에 다시 “나라”라는 단어가 반복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나라가 완전히 주와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전에는 인간의 욕망과 죄악이 지배하던 영역이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곱째 나팔은 단지 재앙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통치를 선포하는 승리의 나팔입니다.

정통 교회는 오래전부터 이 장면을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결하여 이해해 왔습니다. 주께서 다시 오실 때 세상의 모든 권세는 무너지며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했던 성도들의 간구가 마침내 성취되는 순간입니다(마 6:10). 성도들은 이 땅에서 눈물로 살아왔고 조롱과 핍박 속에서도 복음을 붙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인내의 끝에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반면 신천지는 이 일곱째 나팔을 자신들의 역사 속 사건으로 축소시켜 해석합니다. 그들은 일곱째 나팔이 자신들의 단체가 세워질 때 이미 울렸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조직이 세상 나라를 대신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통치의 중심에 인간 지도자를 세워 놓고 그를 계시를 받은 왕처럼 높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느 인간도 세세토록 왕 노릇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왕이십니다. 사람을 높이고 인간 조직을 절대화하는 순간 그 해석은 이미 복음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사람의 영광이 아니라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드러내는 책입니다.

일곱째 나팔이 울리자 하늘에서는 큰 음성이 터져 나왔고 하나님 앞에 있던 이십사 장로는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합니다(16). 요한계시록에서 이십사 장로는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 전체를 상징합니다. 열두 지파와 열두 사도를 통하여 구약과 신약의 교회 전체를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광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라고 경배합니다(17). 이 고백 속에는 하나님의 영원성과 전능하심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인간의 권력도 바뀌고 시대의 사상도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는 하나님은 역사의 처음과 마지막을 붙들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역사를 자신들이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모든 시대를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시대를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세상의 흐름이 아무리 거세다 해도 하나님의 주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십사 장로의 경배는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참된 예배는 인간을 높이지 않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단은 언제나 사람을 중심에 둡니다. 신천지는 이 경배의 장면마저 자신들의 지도자를 높이는 방향으로 왜곡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영광을 인간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말씀합니다(마 4:10). 사람을 높이는 종교는 결국 우상이 됩니다.

이어지는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라고 말씀하시며, 마지막 심판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18).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를 싫어합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 없이 살고 싶어합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속박처럼 여기며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 뜻대로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분노는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오게 됩니다.

여기서 “죽은 자를 심판하신다”는 말씀은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요한계시록은 믿지 않고 죽은 자들과 믿음 안에서 죽은 자들을 구분하여 표현합니다. 불신자들은 단순히 “죽은 자들”이라고 기록되지만 믿음 안에서 죽은 자들은 “영혼들”로 표현됩니다(6:9). 그러므로 여기서의 심판은 하나님을 거부한 자들에 대한 최후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죽음 이후에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심판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동시에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라고 약속하십니다(18).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눈물을 잊지 않으십니다. 세상에서는 이름 없이 살아간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모두 기억하십니다.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심을 보십니다.

신천지는 이 상급의 약속을 자신들의 조직에 충성한 자들에게만 적용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고 기록하며 구원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주어진다고 선포합니다(엡 2:8).

또한 하나님께서는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18). 인간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세상을 탐욕으로 더럽혀 왔습니다. 죄는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죄는 세상을 오염시키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질서를 무너뜨립니다. 탐욕과 거짓과 우상숭배는 결국 세상을 파괴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악을 결코 영원히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마침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언약궤가 보입니다(19).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언약을 상징합니다. 구약 시대에 언약궤는 지성소 안에 감추어져 있었고 아무나 볼 수 없는 거룩한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늘 성전이 열리며 언약궤가 드러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완전히 성취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으신 약속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의 개방은 동시에 심판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19). 이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입니다(8:5).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세상 위에 심판을 내리십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사랑만 말하고 싶어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도 함께 선포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신천지는 여기서도 언약궤와 우박을 자기들 방식대로 왜곡합니다. 언약궤를 특정 인간이 받은 계시로 바꾸고 우박을 인간 지도자와 연결시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과 어린양입니다. 인간은 결코 계시의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기록된 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기록된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은 결국 두 길을 보여 줍니다. 하나는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다 심판에 이르는 길이며 다른 하나는 어린양의 통치 아래 들어가 영원한 상급을 누리는 길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교회를 조롱하고 복음을 미련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는 반드시 그리스도께 속하게 됩니다.

일곱째 나팔은 단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나팔은 오늘도 성도들에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경고이며 동시에 소망입니다. 세상의 나라는 결국 사라질 것입니다. 인간의 영광도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흔들리는 세상을 붙잡지 말고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라는 말씀은 성취될 미래의 소망이며, 오늘 교회가 붙들어야 할 믿음의 고백입니다(15). 세상이 혼란스러워도 결국 역사의 마지막은 그리스도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말씀을 붙들고 진리를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나라를 반드시 완성하실 것이며 그 나라 안에 속한 자들을 영원히 기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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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정현님의 댓글

정현 작성일

샬롬.

눈에보이는 것들이 크고 두려운 시간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내 눈에 보이는 어떤 형상이 아닌것은 내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듭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며 경외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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