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수) 요한계시록 14:14-20 / 익은 곡식의 추수와 익은 포도의 추수 / 이정호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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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1건 조회 36회 작성일 26-07-08 05:29

본문

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요한은 이제 마지막 추수의 장면을 바라보게 됩니다. 앞선 말씀에서는 시온 산 위에 서 계신 어린양과 십사만 사천의 승리가 선포되었고, 세 천사를 통하여 영원한 복음과 바벨론의 멸망, 그리고 짐승을 따르는 자들에 대한 심판이 선언되었습니다. 이제 그 모든 경고의 끝에 이루어질 최후의 추수가 펼쳐집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들과 짐승에게 속한 자들이 완전히 구분되는 순간입니다. 구원의 완성과 심판의 완성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장면입니다.


요한은 흰 구름 위에 인자 같은 이가 앉아 계신 모습을 봅니다(14). 그의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손에는 이한 낫이 들려 있습니다. 여기서 인자 같은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다니엘은 이미 오래전에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갔다”고 예언했습니다(단 7:13). 예수님께서도 스스로를 인자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구름 위에 앉아 계신 이는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분은 금 면류관을 쓰고 계십니다(14).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이시며 모든 심판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은 오랫동안 인간의 권세가 영원할 것처럼 움직여 왔습니다. 짐승의 세력은 강해 보였고 성도들은 약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역사의 주권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심이 드러나게 됩니다. 심판은 사람의 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직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큰 음성으로 외칩니다. “땅의 곡식이 다 익었으니 거두라”고 말합니다(15). 곡식이 익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죄인들이 돌이키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세상에는 반드시 마지막 때가 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내에는 끝이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추수가 시작됩니다. 


정통교회는 이 장면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들의 구원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성도들은 공중으로 끌어올려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바울은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합니다(살전 4:17). 그러므로 익은 곡식의 추수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구원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신천지는 이 추수를 자신들의 조직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로 해석합니다. 자신들의 교리를 받아들이고 조직 안에 들어온 자들이 곧 추수된 알곡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자신들의 지도자들이 천사의 역할을 대신하여 추수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추수를 특정 시대의 한 종교 집단으로 들어오는 일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추수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추수의 대상은 온 세상 가운데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3:30). 또한 “추수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라고 설명하셨습니다(마 13:39). 성경은 추수를 언제나 세상 끝과 연결합니다. 특정 단체 안으로 들어오는 사건으로 축소하지 않습니다.


요한은 이어서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봅니다(17). 그 역시 이한 낫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외칩니다. “포도송이가 익었으니 거두라”고 말합니다(18). 이번에는 곡식이 아니라 포도송이입니다. 포도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져집니다.


여기서 포도송이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짐승을 따르던 악인들을 상징합니다. 그들의 죄악이 가득 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셨지만 이제 심판의 때가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가볍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죄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게 됩니다.


특별히 포도송이가 익었다는 말씀은 악이 절정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점점 하나님을 대적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죄를 죄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죄를 자랑합니다. 진리를 미워하고 하나님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심판의 날이 되면 숨겨졌던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신천지는 이 포도송이를 자신들이 말하는 첫 장막 성도들로 해석합니다. 그들이 배도했기 때문에 심판받는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포도주 틀을 자신들의 말씀 심판 정도로 축소하여 설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포도송이를 특정 집단의 실패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계시록 18장은 바벨론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다고 말씀하며, 온 세상을 미혹한 악에 대한 심판을 보여 줍니다(18:5). 그러므로 포도송이는 하나님을 거부한 전 세계 악인들을 의미합니다.


포도송이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져집니다(19). 그리고 그 틀이 밟히자 피가 흘러나옵니다. 성 밖에서 포도주 틀이 밟히는데 피가 말 굴레에까지 닿고 천육백 스타디온에 퍼집니다(20). 이 장면은 매우 두렵고 엄중한 심판의 모습입니다.


성 밖이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의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이 바깥에서 심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세상은 여러 길이 있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의 길이라고 선포합니다.


천육백 스타디온은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한 스타디온은 약 백팔십오 미터 정도입니다. 천육백 스타디온은 약 삼백 킬로미터 가까운 거리입니다. 정통교회는 이것을 문자적 거리보다 하나님의 심판이 완전하고 광범위하게 임한다는 것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죄악에 대한 심판이 제한 없이 온 세상에 임하게 될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특별히 피가 말 굴레에까지 닿았다는 표현은 심판의 처참함과 철저함을 보여 줍니다. 말 굴레는 말의 입 부분에 씌우는 도구입니다. 피가 그 높이까지 찼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두렵고 완전한지를 상징합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볍게 여기지만 마지막 심판은 결코 가벼운 사건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천지는 이 장면을 특정 집단 안에서 일어난 지역적 사건 정도로 축소시킵니다. 피가 퍼진 것을 자신들의 조직 안에서 사건이 알려진 정도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전 세계적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정 지역이나 특정 종교 단체의 갈등으로 축소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공의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거룩하신 재판장이십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세상은 심판의 메시지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심판 없는 복음은 성경의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왜 필요한지를 알려면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두려운지를 알아야 합니다.


동시에 이 말씀은 성도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세상은 때때로 악인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성도는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추수의 날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반드시 구별하십니다. 알곡과 가라지는 함께 자라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지막에는 완전히 나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의 성공을 부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없이 누리는 번영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세상의 영광은 결국 포도주 틀 아래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나 어린양을 끝까지 따르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워질수록 세상은 점점 더 하나님을 대적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는 일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 추수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요한계시록 14장은 우리에게 분명한 두 길을 보여 줍니다. 어린양과 함께 시온 산에 서는 길이 있고,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 아래 심판받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의 길로 나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믿음을 붙들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럽고 악이 강해 보여도 마지막 승리는 어린양께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반드시 구원하시고, 악을 완전히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날에 기쁨으로 주님 앞에 서기 위하여 오늘도 말씀 가운데 깨어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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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정현님의 댓글

정현 작성일

샬롬.

중학교때인거같은데.
지존파라는 살인조직의 엽기적인 뉴스를 듣고 혼자 집에있던 나는 너무 무서워서 온집에 창을 가리고 현관문을 다시 확인하고 가장 구석진 곳에서 숨어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더 공포스러운 범죄의 뉴스를 들어도 별로 놀래지지않습니다. 이렇게 죄에 무뎌져갑니다.

삶 속에서 죄를 지으면서도
그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위한 수단으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살아가기에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그래서 괜찮은 것처럼 살아갑니다.
나의 일상속에서 무뎌진 나의 죄의 무감증을 깊게 생각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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