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님의 댓글
온누리 작성일
♡샬롬♡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노라 다짐하고 뒤돌아 서면 세상과 타협하는 저를
돌아봅니다.
이런 저라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저를 기다려주시는 분이심을 깨닫습니다.
세상의 방법으로 살아내려고 하기보다 말씀을 붙잡고 흔들리더라도 다시 일어서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5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6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7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요한은 다시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게 됩니다. 일곱 천사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는 장면입니다(1). 계시록은 이미 여러 차례 심판을 보여 주었습니다. 인의 심판이 있었고, 나팔의 심판이 있었으며, 이제 마지막으로 대접 심판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셨고 수없이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짐승을 경배하였고 우상을 붙들었으며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심판은 피할 수 없는 공의의 집행으로 임하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이 장면을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이라고 표현합니다(1). 이는 앞으로 펼쳐질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두렵고 엄중한지를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만 말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도 함께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죄를 오래 참으실 수는 있으나 영원히 용납하지는 않으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라는 말씀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1).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오래 참으셨던 모든 인내가 이제 마지막 심판으로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죄악이 가득 찬 세상은 결국 하나님의 공의 앞에 서게 됩니다. 세상은 하나님 없이도 영원할 것처럼 움직이지만, 역사의 마지막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요한은 심판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을 보게 됩니다(2). 계시록 4장에서 이미 유리 바다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거룩함과 영광의 상징으로 등장했습니다(4:6). 그런데 여기서는 불이 섞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과 함께 심판의 공의가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불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정결케 하심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불이 섞인 유리 바다는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 유리 바닷가에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서 있습니다(2). 이들은 마지막 시대의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성도들입니다. 짐승의 권세 앞에서 타협하지 않았고, 우상숭배를 거절하였으며,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정치적 압박과 종교적 핍박, 경제적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어린양을 붙들었습니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단순한 종교적 선택 정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와 연결된 일이었습니다. 매매를 금지당하고 사회적 배제를 당하며, 심지어 죽음의 위협까지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끝까지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기억하십니다. 세상은 그들을 패배자처럼 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승리자로 선언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노래합니다(2).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거문고가 하나님의 거문고라는 점입니다. 성도들의 찬양은 인간의 능력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부르는 찬양입니다. 구원도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찬양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찬양은 언제나 하나님 중심입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입니다(3). 이는 출애굽기 15장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 모세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애굽의 군대는 바다에 빠져 멸망하였고, 하나님의 백성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노래는 구원의 노래였습니다. 이제 요한계시록에서 성도들이 부르는 어린양의 노래 역시 동일한 의미를 가집니다.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받은 자들의 찬양입니다. 구약의 출애굽은 장차 이루어질 완전한 구원의 그림자였습니다. 어린양의 피로 이루어진 구원이야말로 참된 출애굽의 완성입니다.
성도들은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라고 찬양합니다(3).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생각으로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성도는 이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감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라고 고백합니다(3). 하나님의 길은 언제나 옳습니다. 때로 우리는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고난의 이유를 알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성도는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걸어오신 모든 길이 의롭고 참되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어 성도들은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라고 노래합니다(4). 참된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집니다. 인간은 결코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정통교회는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하나님의 구원 사역 전체에 대한 찬양으로 이해합니다. 율법과 복음, 출애굽과 십자가의 구원이 한 하나님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천지는 이 노래를 단순히 구약과 신약이라는 책 정도로 축소하여 해석하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단체를 중심으로 경배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오직 하나님과 어린양만을 높이고 있습니다. 경배의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들은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라고 선포합니다(4). 이는 특정 집단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날에 모든 민족 가운데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게 될 것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시편 기자도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라고 노래했습니다(시 86:9). 하나님 나라의 구원은 특정 민족이나 특정 조직 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요한은 이어서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라고 기록합니다(5). 여기서 증거 장막은 광야의 성막을 떠올리게 합니다. 성막 안에는 언약궤가 있었고, 그 안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증거 장막의 성전은 하나님의 언약과 거룩하심을 상징합니다.
성전이 열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인간의 감정이나 우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과 언약에 근거한 공의로운 심판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을 끝까지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죄를 심판하시는 이유도 하나님의 거룩 때문입니다.
신천지는 여기서 증거 장막 성전을 자신들의 단체 이름으로 연결시킵니다. 그러나 계시록에서 성전은 언제나 하늘의 성전을 가리킵니다(11:19). 본문 어디에도 특정 시대의 지상 조직이 하늘 성전을 대신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전에서 일곱 천사가 나옵니다(6). 그들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의 사역이 거룩하며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았다는 뜻입니다. 심판은 혼란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질서와 거룩 가운데 집행됩니다. 네 생물 가운데 하나가 일곱 천사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줍니다(7). 이는 심판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온다는 뜻입니다. 심판은 악의 폭발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 아래 이루어지는 공의의 집행입니다.
그리고 성전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인하여 연기가 가득하게 됩니다(8). 이는 출애굽기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고, 구름이 가득하여 모세조차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출 40:34-35).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였을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였습니다(왕상 8:10-11).
여기서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고 말씀합니다(8). 이는 이제 중보의 시간이 끝나고 심판의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더 이상 지체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신천지는 이 연기를 진노의 말씀 정도로 축소하여 해석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연기는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본문의 중심은 특정 단체에 들어오는 절차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의 시작입니다.
계시록 15장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악은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짐승의 세력이 강해 보이고 교회가 약해 보이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는 어린양께 속해 있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성도에게 인내를 요구합니다. 유리 바닷가에 선 자들은 쉽게 승리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켰고,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성도의 승리는 세상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양의 피와 끝까지 견디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샬롬♡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노라 다짐하고 뒤돌아 서면 세상과 타협하는 저를
돌아봅니다.
이런 저라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저를 기다려주시는 분이심을 깨닫습니다.
세상의 방법으로 살아내려고 하기보다 말씀을 붙잡고 흔들리더라도 다시 일어서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내려고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