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월) 요한계시록 16:10-21 / 늘 깨어 근신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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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8회 작성일 26-07-13 04:25

본문

10 또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11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12 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4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6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17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

18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20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21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또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매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요한은 이제 다섯째 대접 재앙이 쏟아지는 장면을 바라봅니다(10). 앞선 재앙들이 자연계와 인간의 삶 전반에 임했다면, 이제 다섯째 재앙은 짐승의 보좌 자체를 향하고 있습니다. 짐승의 보좌는 사탄의 권세와 적그리스도의 통치가 집중된 자리입니다. 세상은 그 권세가 영원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짐승을 따르며 안전과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대접을 쏟으시는 순간, 짐승의 나라는 한순간에 흑암과 혼란 가운데 빠집니다.

이 흑암은 애굽에 내렸던 아홉 번째 재앙을 떠올리게 합니다(출10:21-23). 애굽 사람들은 흑암 속에서 서로를 볼 수도 없었고 자기 처소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습니다. 빛이 사라진 세상은 방향을 잃은 세상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은 결국 흑암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과학과 문명으로 세상을 밝히려 하지만, 하나님 없는 빛은 결국 또 다른 어둠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8:12). 참된 빛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점점 더 화려해지고 편리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속은 점점 더 공허해지고 있습니다. 웃고 있지만 불안하고, 많은 것을 가졌지만 만족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내면에는 결국 설명할 수 없는 어둠이 자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자극적인 즐거움을 찾고, 더 큰 성공을 붙들려 하지만 마음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영혼의 빛 되시는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밝음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빛을 붙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 앞에 머무를 때 우리의 영혼은 다시 밝아지게 됩니다.

그러나 더욱 두려운 것은 재앙 속에 나타난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사람들은 고통 때문에 자기 혀를 깨물 정도가 되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비방하고 회개하지 않습니다(11). 고난이 왔다고 해서 모두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죄에 사로잡힌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분노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완악함입니다.

우리도 삶의 고난 속에서 같은 시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찾아오면 문제 자체에만 몰두하기 쉽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깨닫게 하시려는지 돌아보기보다 불평과 두려움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깨우시고, 세상을 붙들던 손을 놓게 하시며, 다시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성도를 무너뜨리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끄시는 손길이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여기서 우리는 회개의 중요성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히 눈물을 흘리는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는 사람의 마음을 굳게 만들어 끝내 돌이키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히3:15). 지금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듣지 않으면, 나중에는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하는 순간이 올 수 있습니다.

신천지는 이 다섯째 재앙을 자신들의 조직 안에서 일어난 내부 갈등이나 배도 사건 정도로 축소시켜 해석합니다. 짐승의 보좌를 특정 교단의 지도부로 바꾸고, 흑암을 교리적 혼란 정도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온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권세의 중심이 무너지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요한계시록의 심판은 특정 지역이나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전 인류적 체계에 대한 심판입니다. 성경의 보편적 메시지를 특정 단체의 역사 안에 가두는 것은 본문의 의미를 크게 왜곡하는 것입니다.

이어 여섯째 천사가 큰 강 유브라데에 대접을 쏟습니다. 그러자 강물이 말라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준비됩니다(12). 유브라데 강은 당시 거대한 제국의 경계선과 같았습니다. 강이 마른다는 것은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문명과 권세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 지키지 않으시면 아무리 견고해도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본문은 이어서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나오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13). 그들은 귀신의 영으로서 온 천하의 왕들을 미혹하여 마지막 전쟁으로 모읍니다(14). 여기서 우리는 세상의 전쟁과 혼란 뒤에 영적인 배후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정치적 갈등과 국제적 충돌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려는 사탄의 움직임이 마지막 시대를 향해 세상을 끌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사람들의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가 점점 커지고 서로를 향한 공격적인 말과 증오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거짓은 빠르게 퍼지고, 사람들은 진리보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붙들려고 합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미혹이 강해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마24:24). 그러므로 세상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말씀 안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떠난 열심은 쉽게 미혹받습니다.

주님께서는 갑자기 성도들을 향해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15). 세상이 전쟁과 혼란으로 흔들리는 가운데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깨어 있는 것입니다. 옷을 지킨다는 것은 믿음을 지킨다는 뜻이며, 거룩함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마지막 때를 준비한다고 하면서 세상의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성경은 두려움보다 깨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성도는 세상의 악함을 따라 더 악해지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타협을 요구해도 믿음을 지키고, 세상이 조롱해도 거룩함을 붙드는 것이 깨어 있는 삶입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기도 가운데 마음을 지키며, 죄와 타협하지 않으려 애쓰는 삶이 결국 옷을 지키는 삶입니다.

아마겟돈 전쟁 역시 문자 그대로 특정 지역에서 벌어질 전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16). 정통교회는 이를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과 하나님의 나라 사이의 최후의 영적 전쟁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신천지는 이것을 자신들의 교리 싸움이나 특정 집단 사이의 충돌로 축소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온 천하의 임금들”이 모인다고 말씀합니다(14). 이는 전 세계적이고 종말론적인 사건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특정 단체의 내부 역사를 기록한 책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마침내 일곱째 천사가 대접을 공중에 쏟습니다. 그러자 성전에서 “되었다”는 큰 음성이 들려옵니다(17).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셨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요19:30).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성취되었다는 선언입니다. 구원의 역사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완성되었고, 심판의 역사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완성됩니다.

이어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와 큰 지진이 일어납니다(18). 성경은 창세 이후 이와 같은 지진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큰 성 바벨론은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집니다(19). 바벨론은 하나님 없이 세워진 인간 문명의 상징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도시와 문명과 권세를 영원할 것처럼 자랑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무너질 뿐입니다.

섬도 사라지고 산도 없어집니다(20). 인간이 가장 견고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라지는 장면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 흔들리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고 권면합니다(히12:28). 그러므로 성도는 흔들리는 세상에 마음을 두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제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사람들에게 쏟아집니다(21). 그런데도 사람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비방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인간의 완악함이 마지막까지 드러나는 것입니다. 신천지는 이 우박을 특정 지도자나 조직의 사건으로 해석하지만, 본문은 실제적이고 전 우주적인 심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6장은 결국 두 부류의 사람을 보여 줍니다. 하나는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며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또 하나는 깨어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성도들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두려움 속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입니다. 문제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은 무너질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끝까지 말씀을 붙들고 깨어 살아가는 자에게 주님께서는 반드시 영원한 승리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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