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수) 요한계시록 18:1-8 /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라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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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14회 작성일 26-07-15 04:40

본문

 1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5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7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요한은 큰 권세를 가진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을 바라봅니다. 그 천사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땅을 환하게 비추며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고 큰 음성으로 외칩니다(2). 아직 눈앞의 현실에서는 바벨론이 건재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멸망을 확정된 사실로 선언하고 계십니다. 성경이 “무너졌도다”라고 과거형으로 기록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미래는 흔들리는 가능성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질 확정된 계획입니다. 세상의 역사는 사람의 손에 달린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모든 역사의 결론은 하나님의 공의 안에서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눈앞의 현실만 바라보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세상이 아무리 견고해 보여도 하나님 없이 세워진 바벨론은 이미 무너진 성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며 인간 스스로 높아지려는 세상의 총체적인 모습을 상징합니다. 창세기의 바벨탑은 인간이 하나님 없이 하늘에 닿으려 했던 교만의 상징이었습니다(창 11:4). 다니엘서에 나타난 느부갓네살의 제국도 하나님을 거역하는 인간 권세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단 4:30). 요한계시록의 바벨론 역시 하나님을 거부하고 인간의 힘과 문명과 욕망을 절대화하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은 어느 한 나라나 특정 단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사상 속에서 하나님을 밀어내고 인간 자신을 높이는 모든 세상의 구조가 곧 바벨론입니다.

그런데 신천지는 이 바벨론을 자신들이 주장하는 특정 단체나 기관으로 제한하여 해석합니다. 심지어 어떤 교육기관이나 특정 교회를 바벨론이라고 규정하며 자신들의 공동체만이 구원의 장소인 것처럼 가르칩니다. 그러나 정통교회는 성경 전체의 흐름 안에서 바벨론을 해석합니다. 바벨론은 특정 지역이나 집단을 지칭하는 좁은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하는 세상 전체의 체계와 흐름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땅의 왕들”과 “땅의 상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을 함께 언급하며, 바벨론의 영향력이 세계 전체에 미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9-19). 따라서 바벨론을 특정 단체 하나로 축소시키는 해석은 성경의 흐름을 무너뜨리는 자의적 해석일 뿐입니다.

천사는 바벨론의 본질을 폭로합니다.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이라는 말씀은 바벨론의 화려함 뒤에 숨어 있는 영적 실체를 드러냅니다(2).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발전과 성공을 부러워하지만, 하나님 없이 세워진 문명의 중심에는 더러운 영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인간의 욕망을 자극합니다. 더 많이 가지라고 속삭이고, 더 높아지라고 유혹하며, 하나님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하나님을 떠난 영적 어둠이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 속에서도 그러한 모습은 너무나 쉽게 발견됩니다. 사람들은 불안한 미래를 알기 위해 점집과 사주와 타로를 찾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붙잡기 위해 귀신의 말을 의지하려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미래를 점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이미 아시며, 우리의 삶을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일의 일을 미리 아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라고 고백하였습니다(시 31:15). 믿음은 미래를 계산하는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고 명령하십니다(4). 세상 속에서 살아가되 세상의 죄에 참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세상과 완전히 분리된 공간으로 도피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직업을 가지고 경제활동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가치관에 동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성공을 위해 양심을 버리며, 사람을 이용의 대상으로 삼는 삶을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천지는 이 말씀을 자신들의 공동체로 들어오라는 명령처럼 왜곡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느 특정 단체로의 이동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에 참여하지 않는 거룩한 삶을 요구합니다.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는 말씀처럼(4), 성도는 세상의 죄악된 가치관을 거부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을 자기 단체로 끌어들이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서 나오라”는 명령은 세상의 죄악된 정신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회개의 부르심입니다.

바벨론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습니다(5). 죄가 하늘에 사무쳤다는 말은 그 죄악이 하나님 앞에 가득 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결코 죄를 영원히 묵인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조롱하며 살아갑니다. 스스로 강하다고 여기고, 아무도 자신들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벨론은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7). 이것은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이며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무시입니다.

교만은 언제나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사람은 자신의 힘이 커질수록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과학과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스스로를 더욱 높이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높아진 인간의 문명은 결국 심판 아래 무너집니다. 느부갓네살은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한 것이 아니냐”고 자랑하였지만, 결국 하나님 앞에서 짐승처럼 낮아졌습니다(단 4:30-33). 

그래서 하나님은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8). 세상은 영원할 것처럼 보이지만 심판은 갑작스럽게 임합니다. 요한계시록은 반복해서 “한 시간에”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10). 이는 심판의 신속함과 갑작스러움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에는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세상은 자신들의 경제와 문명을 자랑하지만, 하나님은 그 화려함 뒤에 있는 탐욕과 잔인함을 보십니다. 상인들이 사고파는 목록 속에는 금과 은과 보석뿐 아니라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13). 사람의 영혼까지 상품처럼 사고파는 세상의 잔혹함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하나님 없는 경제는 결국 사람까지 도구화합니다. 돈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고, 성공을 위해 양심을 버리며, 이익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립니다.

신천지는 이 물건들의 목록을 모두 상징으로 돌려 자신들의 교리 체계에 억지로 끼워 맞춥니다. 그러나 본문은 실제 세상의 탐욕과 사치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현실 속의 죄악된 경제 구조와 인간의 욕망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상징은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정통교회는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단은 자신들의 결론을 위해 성경을 이용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말씀 전체의 흐름 안에서 바른 교훈을 분별해야 합니다.

바벨론이 무너질 때 세상은 통곡합니다. 왕들과 상인들은 멀리 서서 두려워하며 울부짖습니다(9-10). 그들이 슬퍼하는 이유는 죄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부와 권세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던 것을 잃을 때 울게 됩니다. 세상을 사랑한 자는 세상이 무너질 때 절망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한 자는 세상이 흔들려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반면 하늘에서는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는 기쁨의 음성이 울려 퍼집니다(20). 세상은 슬퍼하지만 하늘은 기뻐합니다. 이는 누군가의 불행을 즐거워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마침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억울하게 피 흘린 성도들의 눈물이 기억되었고, 하나님께서 마침내 심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빌 3:20).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의 성공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더 사모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8장은 단지 미래의 심판을 설명하는 예언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경고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화려합니다. 사람들은 성공과 쾌락과 물질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영광은 결국 무너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4). 

성도는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돈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공보다 거룩을 붙들며,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구해야 합니다. 교만하지 말고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지 말고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결국 남는 것은 바벨론의 화려함이 아니라 어린양의 나라입니다. 세상의 성은 무너지지만 하나님 나라의 성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너질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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