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10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11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그릇이요 값진 나무와 구리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14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15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16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17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18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쳐 이르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하며
19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요한은 바벨론의 멸망을 바라보며 슬퍼하는 세상의 모습을 기록합니다. 땅의 왕들과 상인들과 선장들과 선객들과 선원들이 멀리 서서 그 무너짐을 바라보며 울부짖습니다(9-19). 그러나 그들의 눈물은 회개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애통해하는 슬픔이 아니라, 자신들이 의지하던 세상의 부요함이 무너진 것에 대한 절망이었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합니다. 그래서 바벨론이 무너지자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하기보다 자신들의 이익이 사라진 것을 슬퍼합니다.
요한계시록 18장은 세상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강해 보였던 바벨론이지만, 그 중심에는 음행과 탐욕과 교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번영은 결국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바벨론은 자신들의 힘과 부요함을 의지하며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살아갔습니다. 사람들은 바벨론을 바라보며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고 외쳤습니다(18). 그만큼 바벨론은 압도적인 힘과 부를 가진 존재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순간 그 모든 영광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맙니다.
성경은 바벨론의 멸망을 반복해서 “한 시간”이라고 표현합니다(10, 17, 19). 사람들은 평생을 바쳐 세운 것들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거대한 제국도, 경제도, 권력도 영원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세상은 모래 위에 세워진 집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반석 위에 집을 세운 사람과 모래 위에 집을 세운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 때 모래 위의 집은 무너져 내렸습니다(마 7:26-27). 세상은 자신의 힘으로 영원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을 떠난 영광은 결국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바벨론을 세워 왔습니다. 강대한 제국들이 영원할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사라졌습니다. 바벨론도 그랬고 로마도 그러했습니다. 사람들은 과학과 문명과 경제력을 자랑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영원할 수 없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나라를 바라보며 스스로 높아졌지만 결국 하나님 앞에서 낮아졌습니다(단 4:30-32). 인간의 교만은 언제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교만은 단지 자신을 자랑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독립선언입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신뢰하고, 하나님보다 세상의 힘을 더 의지하는 마음이 곧 교만입니다.
땅의 왕들은 바벨론이 불타는 연기를 보며 두려워합니다(9-10). 그러나 그들은 가까이 가지 못합니다. 멀리 서서 바라볼 뿐입니다. 세상이 의지하던 힘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아무런 능력이 없음을 보여 줍니다. 왕들이라도 바벨론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상인들도 울며 애통합니다. “다시는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고 말합니다(11). 그들의 슬픔은 사람을 향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중심에는 언제나 물질이 있습니다. 돈이 숭배받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상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물질을 통해 안정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돈이 많으면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물질은 결코 사람의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더욱 탐욕스럽게 만들 뿐입니다. 세상은 더 많이 가지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만족할 줄 아는 삶을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라고 경고하였습니다(딤전 6:10). 돈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할 때 사람은 바벨론의 정신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상인들이 사고파는 목록 가운데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을 기록합니다(13). 바벨론은 사람의 영혼까지 상품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조차 돈 앞에서는 거래의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은 결국 사람을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더 큰 이익을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고, 돈을 위해 양심을 버립니다. 세상의 탐욕은 인간의 영혼까지 집어삼키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러한 현실을 어렵지 않게 바라봅니다.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자신의 영혼을 팔기도 합니다. 정직보다 이익을 우선하고, 양심보다 욕망을 따라갑니다. 사람의 가치는 돈의 크기로 판단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거짓을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성공을 위해 가족과 신앙까지 뒤로 미루어 버립니다. 세상은 결과만 좋으면 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과정의 거룩함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살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삼상 16:7).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을 무조건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믿음 없이 얻는 성공보다 하나님 안에서의 순종이 더 귀한 것입니다.
더욱 두려운 사실은 사람의 마음이 조금씩 바벨론에 익숙해진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죄를 두려워하지만, 반복되는 욕심 속에서 점점 양심이 무디어집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조금쯤은 괜찮다”고 말합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간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작은 탐욕을 가볍게 여기면 결국 더 큰 죄로 이어지게 됩니다. 가룟 유다도 처음부터 예수님을 팔 생각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다가 결국 주님을 은 삼십에 팔게 되었습니다(마 26:14-15). 탐욕은 마음속에서 자라나 결국 신앙까지 무너뜨립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영혼을 그렇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의지하는 순간, 사람은 바벨론의 길로 들어가게 됩니다.
신천지는 이 본문에 나오는 상인들과 상품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합니다. 그들은 상인들을 특정한 종교 지도자들이나 전도자들로 해석하고, 상품 목록을 자신들의 교리 체계에 억지로 연결시킵니다. 그러나 정통교회는 본문을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이해합니다. 여기서 상인들은 실제 경제적 탐욕을 상징하며, 바벨론은 하나님 없이 돌아가는 세상 체계를 의미합니다. 성경은 세상의 물질주의와 탐욕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을 특정 단체나 기관에만 국한시키는 것은 성경의 의미를 왜곡하는 해석입니다.
바벨론은 스스로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람들도 그 화려함을 보며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라고 선언하십니다(19). 세상은 강해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너질 세상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부요함과 성공을 인생의 목적처럼 붙잡고 살아가면 결국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영원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뿐입니다. 베드로는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라고 말합니다(벧후 3:10). 세상은 결국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영원합니다. 성도는 그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선은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향해야 합니다.
20절에서 하늘은 기뻐합니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20). 땅에서는 통곡이 들리지만 하늘에서는 찬양이 울려 퍼집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눈물과 기도가 헛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마침내 악을 심판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자신들의 힘이 영원할 것처럼 살아가지만, 결국 모든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바벨론의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눈앞의 성공과 물질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기준이 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 가지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바벨론도 결국 무너졌습니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는 영광은 결국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는 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고백하였습니다(시 46:1). 세상이 흔들려도 하나님 나라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을 붙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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