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금) 요한계시록 18:21-19:10 / 어린양의 혼인잔치와 성도의 예복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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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11회 작성일 26-07-17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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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이에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22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19장】


 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 두 번째로 할렐루야 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4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 장면으로 요한계시록 18장은 마무리됩니다. 그 장면은 매우 엄중하고 두려운 모습입니다. 천사는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지고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라고 선언합니다(21). 하나님께서 세상에 대하여 내리시는 심판이 얼마나 철저하며 완전한지를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맷돌이 깊은 바다 속으로 던져지면 다시 떠오를 수 없듯이, 하나님을 대적하던 바벨론 역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대하여 반복해서 “결코 다시”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21-23). 거문고와 풍류와 퉁소와 나팔 소리도, 세공업자의 소리도, 맷돌 소리도, 등불 빛도, 신랑과 신부의 음성도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됩니다(22-23). 세상이 자랑하던 문화와 기술과 기쁨과 번영이 완전히 끊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문명이 발전할수록 세상이 더 안전해지고 견고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의 지혜와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문명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벨론은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그 안에는 탐욕과 음행과 교만이 가득했습니다. 세상은 자신들의 풍요와 발전을 자랑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중심에 있는 죄악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벨론을 향하여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영원한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바벨론의 죄악은 결국 피 흘림으로 이어졌습니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24). 바벨론은 단순히 향락을 즐기는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욕망을 유지하기 위해 의로운 자들을 핍박하고 죽였던 세상이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거부하는 세상은 참된 믿음을 가진 자들을 미워해 왔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였고, 아합과 이세벨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핍박하였으며, 세상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탐욕과 교만은 결국 폭력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은 잔인한 분노가 아니라 거룩한 공의의 집행입니다.

신천지는 이 부분을 해석하면서 역사 속의 핍박과 순교를 모두 막연한 영적 비유로 돌려 버립니다. 그들은 실제 역사 속에서 있었던 성도들의 고난과 피 흘림을 지나치게 상징적으로만 해석합니다. 그러나 정통교회는 성경을 실제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성도들의 눈물과 순교는 실제였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피의 호소를 들으시고 반드시 심판하십니다(16:5-7). 그러므로 바벨론은 단순히 어떤 특정 단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며 우상을 숭배하는 세상 권세 전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바벨론의 멸망과 함께 전혀 다른 음성이 울려 퍼집니다. 세상은 무너짐으로 통곡하지만 하늘은 “할렐루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라고 찬양합니다(19:1). 성도들의 찬양은 단지 악인의 멸망을 기뻐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났고, 억울함 가운데 눈물 흘리던 성도들의 기도가 응답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결코 악을 영원히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차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은 때로 억울함과 고난을 경험합니다. 세상은 악한 자들이 더 형통해 보이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그 끝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잠시 동안 세상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마지막 승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눈앞의 현실만 바라보며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합니다(롬 8:18).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눈물을 잊지 않으시며 반드시 위로하십니다.

성도들이 드리는 “할렐루야”의 찬양은 고난이 끝난 후에만 가능한 찬양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께 찬송하였고(행 16:25),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합 3:17-18). 성도의 찬양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악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성도는 눈물 가운데서도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너희들아 찬송하라”는 음성이 들립니다(19:5). 하나님 앞에서는 세상의 지위와 힘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부와 권력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가장 귀합니다. 그래서 하늘의 찬양은 모든 성도들이 함께 드리는 찬양입니다. 큰 자만이 아니라 작은 자도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이름 없이 살아간 성도들의 믿음도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마침내 어린양의 혼인 잔치로 이어집니다.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라고 말씀합니다(7). 바벨론의 음녀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장면입니다. 음녀는 세상의 탐욕과 쾌락을 상징하지만, 신부는 거룩함과 순결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린양 되신 신랑으로 묘사되고, 성도는 신부로 묘사됩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신부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고,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는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기쁨과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혼인 풍습 속에서 신랑은 신부를 맞이하기 위하여 값을 지불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때가 되면 신부를 데리러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의 피 값으로 교회를 사셨고, 다시 오셔서 자기 백성을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 속에서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거룩함을 지켜야 합니다.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며 자신을 단장하듯이, 성도 역시 말씀과 기도 가운데 자신을 준비해야 합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요 2:7-10). 그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완전한 기쁨을 보여 주는 표적이었습니다. 세상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눈물도 없고 슬픔도 없으며 영원한 안식과 기쁨이 있습니다. 세상의 즐거움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결국 허무함만 남게 되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환경에 따라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 땅의 잠시 있는 만족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장차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기쁨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된 만족과 생명의 충만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에게 허락된 것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입니다(8). 성경은 이 세마포를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설명합니다(8). 구원은 우리의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받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는 거룩한 삶으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세마포는 성도의 거룩한 삶을 의미합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이 곧 혼인 잔치의 예복입니다.

신천지는 이 부분을 자신들의 교리와 조직 안에서 특별한 자격을 얻는 것으로 왜곡하여 해석합니다. 그러나 정통교회는 세마포를 성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의와 성령의 열매로 이해합니다. 성도의 거룩함은 특정 단체에 속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세상적 성공보다 거룩함을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타협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거룩함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편안함과 이익을 따라 살아가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순결한 신부의 삶을 요구하십니다. 믿음은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자리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정직한 척하면서 하나님 앞에서는 탐욕을 품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세마포를 더럽히는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9). 성도의 참된 복은 세상의 성공이 아닙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세상은 결국 사라지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바벨론의 화려함보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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