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9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10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11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면은 단순한 결말이 아닙니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완성되는 자리이며, 죄로 인해 무너졌던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영광의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까지 자기 백성을 향하여 말씀하시고, 그 말씀의 신실하심을 확증하십니다. 요한은 천사를 통하여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는 선언을 듣습니다(6). 요한이 본 모든 환상과 예언은 인간의 상상이나 두려움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의 약속은 변할 수 있고 세상의 계획은 무너질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천사를 보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6). 여기서 “속히”라는 말씀은 단순히 인간의 시간 계산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언제나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오실 것처럼 깨어 있어야 하고 마지막 날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어 주님께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라고 선언하십니다(7).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에서 반복되는 이 말씀은 교회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소망입니다. 세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재림 신앙을 희미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현실의 성공과 안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영원한 나라를 기다리는 마음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재림의 소망을 잃어버리면 세상과 다를 바 없는 공동체가 되어 갑니다. 눈앞의 번영과 성공만 추구하게 되고 거룩보다 현실의 안락함을 더 붙들게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 속에서도 “마라나타”를 외쳤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고백은 그들의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현재의 고난을 견뎌 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신앙이 필요합니다. 재림의 소망이 살아 있을 때 성도는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거룩함으로 자신을 단장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요한은 이 놀라운 계시를 듣고 본 후 천사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합니다(8). 그러나 천사는 즉시 요한을 만류하며 “나는 너와 및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말합니다(9). 이것은 매우 중요한 장면입니다. 아무리 놀라운 계시를 전하는 존재라도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사조차 자신은 하나님을 섬기는 종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신천지는 자신들의 교주를 “새 요한”이라 부르며 계시록의 실상을 깨달은 유일한 존재처럼 높입니다. 그에게 배우고 그의 해석을 받아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계시를 특정 인간에게 독점시키지 않습니다. 계시는 교회를 위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목회자들을 통하여 교회에 말씀을 주셨고 성령께서 교회 가운데 역사하시며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인간도 중보자의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경배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10). 다니엘에게는 마지막 때까지 그 말씀을 봉하라고 하셨지만(단 12:4), 이제 요한계시록에서는 봉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10). 신약의 교회는 감추어진 비밀을 숨겨 두는 공동체가 아니라 복음을 세상에 선포하는 공동체입니다.
신천지는 이 말씀을 자신들의 교주에게만 계시록의 비밀이 열렸다는 의미로 왜곡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그에게 와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인봉하지 말라”는 말씀은 특정 인물에게만 열어 두라는 뜻이 아닙니다. 교회가 읽고 듣고 지키도록 공개하라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일곱 교회에 보내진 편지이며 모든 성도가 읽고 붙들어야 할 말씀입니다(1:3). 계시는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라 온 교회의 유산입니다.
이어지는 11절의 말씀은 사람의 영적 상태가 마지막 날에 드러나게 될 것을 보여 줍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11). 이 말씀은 회개할 기회가 끝난 상태에서 인간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자는 끝까지 거부하고 하나님께 속한 자는 더욱 거룩함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12). 성도의 행위는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받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반드시 삶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믿음의 삶을 기억하시고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또 주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선언하십니다(13).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역사는 우연히 흘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하나님께서 마침내 완성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의 혼란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14절은 복된 자들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14). 여기서 두루마기를 빠는 것은 인간의 수행이나 공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린양의 피로 죄 씻음을 받는 회개와 믿음을 뜻합니다(7:14). 성도의 의는 자기 행위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입혀 주신 의의 옷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근거는 언제나 십자가입니다.
성 밖에는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있다고 말씀합니다(15). 이것은 특정 시대의 악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죄 가운데 머무는 모든 사람을 향한 경고입니다. 특별히 거짓은 매우 심각한 죄로 강조됩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이며 이단은 거짓 교리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이어서 가장 아름다운 초청이 등장합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라고 선언합니다(17). 성령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세상을 향해 복음을 초청하십니다. 이 초청은 특정 조직으로 오라는 초청이 아닙니다.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오라는 초청입니다.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말씀합니다(17).
복음은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이사야는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고 외쳤습니다(사 55:1).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닙니다. 특정 단체에 충성하여 얻는 자격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값을 지불하셨기에 죄인이 거저 받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 의를 내려놓고 주님 앞에 나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한 심령으로 나아오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며, 회개하는 죄인에게 생명의 은혜를 풍성히 베풀어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엄중한 경고를 주십니다.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말씀합니다(18-19).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욕망대로 변형될 수 없습니다. 더해서도 안 되고 빼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지막으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주님의 선언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교회의 응답으로 끝이 납니다(20). 이것이 교회의 마지막 고백입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흔들리고 거짓은 많아지며 미혹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생명수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생명나무는 인간 조직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계시는 한 사람에게 독점되지 않았고 복음은 특정 단체 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오직 어린양의 피로 씻김 받은 자들만이 거룩한 성에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그대로 믿고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회개로 두루마기를 빨며 재림의 소망 가운데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고백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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