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금) 스가랴 11:1-17 / 선한 목자를 배척한 자들에게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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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1건 조회 37회 작성일 26-08-14 04:08

본문

 1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2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쓰러졌음이로다 바산의 상수리나무들아 곡할지어다 무성한 숲이 엎드러졌도다

 3 목자들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들의 영화로운 것이 쓰러졌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쓰러졌음이로다

 4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5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6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주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들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7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8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9 내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리라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하는 자는 망하는 대로, 나머지는 서로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10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꺾었으니 이는 모든 백성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11 당일에 곧 폐하매 내 말을 지키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

12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1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14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리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1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또 어리석은 목자의 기구들을 빼앗을지니라

16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17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그의 팔이 아주 마르고 그의 오른쪽 눈이 아주 멀어 버릴 것이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장차 임할 무서운 심판과 함께, 선한 목자를 배척한 백성들이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지를 매우 엄중하게 말씀하십니다.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는 말씀으로 시작되는 본문은 마치 거대한 산림이 불길 속에서 무너져 내리는 장면을 보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게 합니다(1). 레바논의 백향목은 당시 가장 귀하고 웅장한 나무로 여겨졌습니다. 왕궁과 성전을 건축할 때 사용될 만큼 값비싼 나무였고, 사람들은 그 백향목을 보며 영광과 부요와 권세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화려함을 불사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높아지고 강해지는 것을 축복이라 생각하지만, 하나님 없이 높아진 교만은 결국 심판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이어 하나님께서는 잣나무와 바산의 상수리나무들까지 곡하게 하십니다(2). 잣나무는 평안과 번영을 상징하였고, 상수리나무는 풍요와 음란한 우상숭배의 장소를 떠올리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부요함과 안락함을 자랑하며 육신의 즐거움과 탐욕 가운데 살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을 오래 참으셨지만 끝내 묵과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고 영원할 것 같은 것들도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시면 한순간에 사라질 뿐입니다.

사사기에서 가시나무가 백향목을 향하여 자신에게 절하라고 말했던 장면은 교만한 권세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보여 줍니다(삿 9:15). 또한 솔로몬 시대에 성전과 왕궁을 장식하던 아름다운 나무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사라졌을 때는 더 이상 거룩함의 상징이 될 수 없었습니다(왕상 6:15).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 하나님을 떠난 삶의 재료가 될 때,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심판의 증거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화려함을 꺾으시고 그들이 의지하던 것들을 무너뜨리심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참된 주권자이심을 드러내십니다.

목자들의 곡하는 소리와 젊은 사자의 부르짖음이 들린다는 말씀은 이스라엘 전역에 임할 황폐함을 보여 줍니다(3). 요단의 무성한 초장은 불타 버리고, 양 떼는 더 이상 쉴 곳을 찾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나라는 결국 생명의 터전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아무리 풍요로운 시대라 하여도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악이 가득하다면 그 번영은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것으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 보호의 손길을 거두시면 가장 견고한 성도 순식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에게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고 명령하십니다(4). 양 떼는 돌봄을 받아야 할 존재인데, 그들은 이미 죽음으로 끌려가는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문제는 양 떼를 돌보아야 할 목자들이 양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고 말씀하신 장면은 탐욕에 사로잡힌 지도자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5). 그들은 백성의 눈물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유익을 채웠고, 심지어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고 착각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거절해 왔습니다. 예레미야와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들이 회개를 외쳤지만 백성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짓 평안을 말하는 자들의 목소리를 더 좋아하였습니다. 죄를 책망하는 말씀보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거짓말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참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은 그리스도마저 시기와 탐욕으로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압제 속에서도 회개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종교적 권세와 물질적 유익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땅 주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라고 선언하십니다(6). 하나님께서 긍휼을 거두신다는 것은 가장 두려운 심판입니다. 사람은 물질이 없어도 살 수 있고 건강이 약해져도 견딜 수 있지만, 하나님의 긍휼이 떠난 인생은 참된 소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유대 민족은 결국 로마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거나 흩어지는 아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당한 고통은 우연한 역사의 비극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절한 결과였습니다.

오늘 시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자신들의 욕망을 더 사랑합니다. 진리보다 듣기 좋은 말을 원합니다.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기보다 말씀을 자기 형편에 맞추어 해석하려 합니다. 바울은 다른 복음을 따르는 자들을 향하여 강하게 경고하였습니다(갈 1:6). 복음은 사람을 만족시키는 말이 아니라 죄인을 회개하게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욕심을 위해 성경의 일부만 붙잡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신앙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스가랴는 두 개의 막대기를 취합니다. 하나는 은총이라 하고 하나는 연합이라 부릅니다(7). 은총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보호와 긍휼을 의미하며, 연합은 하나님 백성의 하나 됨과 언약의 결속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받아 마땅한 백성에게도 은혜를 베푸시며 다시 회복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 은혜를 가볍게 여겼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은총의 막대기를 꺾으십니다(10). 이는 그들이 누리던 보호와 은혜가 거두어질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연합의 막대기가 꺾인다는 것은 공동체의 붕괴를 의미합니다(14). 하나님을 떠난 백성은 서로 사랑할 수도 없고 하나 될 수도 없습니다. 탐욕과 교만은 결국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고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실제로 유대 민족은 로마의 침략 속에서 서로 다투고 죽이는 비극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죄성은 결국 자신과 이웃을 파괴하게 됩니다.

특별히 선한 목자의 품삯으로 은 삼십 세겔이 책정되는 장면은 매우 비참한 모습입니다(12). 은 삼십은 종 한 사람의 목숨 값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출 21:32). 유다 백성은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노예의 값으로 팔아넘긴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은 삼십을 받고 예수님을 배반한 사건은 스가랴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장면이었습니다(마 26:15).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찮게 여겼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죄악 된 본성이 얼마나 깊은지도 드러납니다. 사람은 자신의 욕망과 자존심을 건드리는 진리를 싫어합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책망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실 때 사람들은 그 말씀 앞에 무릎 꿇기보다 오히려 주님을 제거하려 하였습니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는 요한복음의 말씀처럼(요 3:19), 죄인은 본성적으로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합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를 따르는 삶은 단순히 종교적 열심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통치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회개의 문제입니다. 참된 신앙은 교회 안에 오래 머무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자신을 비추어 보고, 죄를 돌이키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붙드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한 심령을 멸시하지 않으시며, 회개하는 자에게 은혜의 문을 다시 열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선한 목자의 음성을 따라가야 하며, 세상의 거짓된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선한 목자를 거절한 백성에게는 결국 어리석은 목자가 남게 됩니다(15).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어리석은 목자는 잃은 자를 돌보지 않고 상한 자를 고치지 않으며 연약한 자를 먹이지 않는 자입니다(16). 그는 양 떼를 사랑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배를 채우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는 거짓 지도자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본질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을 살리지 않고, 오히려 백성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욕망을 채웁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 거짓 목자의 팔과 오른쪽 눈을 치실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17). 팔은 힘과 능력을 상징하며, 오른쪽 눈은 분별력과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목자들의 힘을 꺾으시고 그들의 지혜를 어둡게 하십니다. 하나님 없이 높아진 권세와 지혜는 결국 멸망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한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욕망과 거짓된 가르침에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참된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고 상한 영혼을 품으시는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자기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어리석은 길을 버리고, 날마다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며 주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께 돌아오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며, 은혜의 손으로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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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스님의 댓글

민스 작성일

샬롬
♡ 이옥희입니다
하루하루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말씀 묵상을 통해 날마다의 삶이 세상과 구별되는
낮은자로 겸손하게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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