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월)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어다 하라 / 안병찬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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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1건 조회 30회 작성일 26-08-17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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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

 2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모든 민족에게 취하게 하는 잔이 되게 할 것이라 예루살렘이 에워싸일 때에 유다에까지 이르리라

 3 그 날에는 내가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 그것을 드는 모든 자는 크게 상할 것이라 천하 만국이 그것을 치려고 모이리라

 4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모든 말을 쳐서 놀라게 하며 그 탄 자를 쳐서 미치게 하되 유다 족속은 내가 돌보고 모든 민족의 말을 쳐서 눈이 멀게 하리니

 5 유다의 우두머리들이 마음속에 이르기를 예루살렘 주민이 그들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었다 할지라

 6 그 날에 내가 유다 지도자들을 나무 가운데에 화로 같게 하며 곡식단 사이에 횃불 같게 하리니 그들이 그 좌우에 에워싼 모든 민족들을 불사를 것이요 예루살렘 사람들은 다시 그 본 곳 예루살렘에 살게 되리라

 7 여호와가 먼저 유다 장막을 구원하리니 이는 다윗의 집의 영광과 예루살렘 주민의 영광이 유다보다 더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8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

 9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이방 나라들을 그 날에 내가 멸하기를 힘쓰리라

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11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3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4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하늘을 펴시고 땅의 기초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관한 엄중한 말씀을 선포하십니다(1). 스가랴는 가장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이스라엘만 다스리시는 분이 아니라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온 세상을 붙드시며 통치하시는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 역시 우연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안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때로는 징계를 허락하시고 때로는 회복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 되심을 먼저 선포하신 이유는 앞으로 주어질 경고의 말씀이 단순한 멸망의 선언이 아니라 회복과 구원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역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세상은 사람의 계획과 권세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붙드십니다. 우리는 시대의 혼란과 세상의 흐름 앞에서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모든 민족에게 취하게 하는 잔이 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2). 여기서 취하게 하는 잔은 하나님의 진노를 의미합니다. 술에 취한 사람은 중심을 잃고 결국 넘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들 역시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요한은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라고 증거합니다(계 14:10). 하나님의 진노는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임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을 삼키려 하던 이방 민족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3). 사람들이 그 돌을 들려고 하지만 도리어 자기 몸만 상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예루살렘을 인간의 힘으로 무너뜨릴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이 말씀은 모퉁잇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가리켜 교회의 모퉁잇돌이라고 증거하였고(엡 2:20), 베드로는 살아 있는 산 돌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벧전 2:4). 세상은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대적하지만 결코 그분의 나라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 역시 세상 속에서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복음은 점점 가볍게 여겨지고 진리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의 조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세력도 교회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시대의 조롱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승리는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통치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적들의 말과 기수를 혼란에 빠뜨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4). 당시 군마는 강한 군사력을 상징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말들의 눈을 어둡게 하시면 전쟁은 시작되기도 전에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인간의 힘과 무기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한순간에 무너지게 됩니다.

그 광경을 보며 유다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 주민이 그들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었다”고 고백하게 됩니다(5). 그들의 힘은 군사력에 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지도자들을 나무 사이의 화로 같게 하시고 곡식단 사이의 횃불 같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6). 불길이 마른 나무와 곡식단을 태워버리듯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유다는 대적들을 압도하게 될 것입니다.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유다는 매우 초라한 상태였습니다. 변변한 성벽도 없었고 군사력도 부족했습니다. 주변 민족들은 그들을 쉽게 삼킬 수 있는 약한 민족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백성은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원망과 불평을 심고 우리들 사이를 갈라놓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는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환란 가운데서도 말씀으로 더욱 견고하게 세워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장막을 먼저 구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7). 연약한 유다를 먼저 높이심으로 강하다고 여겨졌던 예루살렘이 스스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윗 역시 들판에서 양을 치던 연약한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때 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승리 후에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라고 찬송하였습니다(삼하 22:28).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라고 말씀하십니다(8). 다윗의 강함은 자신의 능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에 그는 강하였습니다. 하나님을 힘입은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유다가 승리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10).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께 돌아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비로소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있습니다. 간구하는 심령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더욱 분명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며 실패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베드로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회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누가는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라고 기록합니다(행 2:37). 하나님께서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실 때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의 죄를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애통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0). 이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회개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닙니다. 죄를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 통회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라고 권면합니다(약 4:9). 자신의 죄를 슬퍼하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은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애통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0). 당시 장자의 죽음은 가문의 끊어짐과 같은 큰 비극이었습니다. 그만큼 깊은 슬픔으로 회개하게 될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죄를 깨달은 사람은 가볍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스가랴는 마지막으로 온 땅이 각 족속대로 따로 애통하게 될 것을 보여줍니다(11-14). 이는 회개가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각 사람 자신의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도 대신 회개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죄를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직분이나 신앙의 연륜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만이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은총의 영을 부어주실 때 사람은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세상의 힘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람의 지혜와 권세 역시 결국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얻는 힘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은 환란 가운데서도 견고하며 눈물 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회개하는 심령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고 통회하는 영혼 위에 하나님의 회복이 임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의 참된 능력은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붙드실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바라보며 애통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 역사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었다”고 고백하게 하실 것입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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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bc075c님의 댓글

79bc075c 작성일

월요묵상
김봉연입니다.

오늘의 말씀
1절에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 가 곧 여호와시라고 하십니다..
많은 비가 내리기도하고 너무나 뜨거운 날씨가 계속되기도하고
세계 여러곳에서 지진이 나서 순식간에 삶의 터전이 무너지며 많은 목숨을 잃기도 하는 것을 보며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다고 하여도 모든 것이 허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결코 자만하지 말고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 겸손히 무릎꿇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오직 구분만이 우리를 구원하시며 다시 회복시키실 분임을 믿습니다.
오늘도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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