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목) 디모데후서 3:1-9 / 경건의 모양만 있는 자들에게서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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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30회 작성일 26-08-27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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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7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

 9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이 된 것과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라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권면합니다(5). 경건은 단지 종교적인 외형이나 말의 고백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경건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삶 속에서 실제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서의 삶을 통하여 참된 경건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내면의 거룩함과 외적인 삶이 완전히 일치된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행동과 삶을 통해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참된 경건은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 능력은 단순히 기적이나 외적인 성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감사하게 하고,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게 하며, 눈물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게 하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삶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입술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삶으로 증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삶을 통해 드러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참된 경건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라고 하였습니다(약 1:27). 반면 헛된 경건은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는 것”이라고 경고합니다(약 1:26). 참된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 거리낌 없이 살아가려는 몸부림이며, 헛된 경건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은 완전한 경건에 이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죄의 본성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넘어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완전함 자체보다도 끊임없이 경건을 이루어 가려는 노력을 기뻐하십니다. 마치 아버지를 닮고 싶어 하는 자녀의 마음처럼 하나님을 닮아 가기를 힘쓰는 삶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세속에 물들지 않으려 애쓰는 삶을 경건이라고 말한 것입니다(약 1:27).

바울은 바로 이러한 삶을 “경건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삶 속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노력이 있을 때 사람들은 그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경건을 이루려는 노력 없이 신앙의 이름만 가진 삶은 결국 껍데기뿐인 신앙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바울은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합니다.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하지 않으며 거룩하지 않습니다. 무정하고 원통함을 풀지 않으며 절제하지 못하고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합니다(2-4). 이러한 삶은 겉으로는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과 멀어진 상태입니다.

참된 경건이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된다면 헛된 경건은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많이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고 돌이키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바울은 경건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가장 먼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2). 이는 자신을 존중하는 건강한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욕망을 따라 살아가려는 탐욕을 의미합니다. 결국 모든 죄의 뿌리에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탐욕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돈을 사랑하게 하며 쾌락을 좇게 합니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이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한다”고 말합니다(6). 여기서 어리석은 여자란 단순히 지혜가 부족한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쉽게 흔들리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경건한 척하며 사람들에게 접근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불안과 죄책감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거짓된 가르침으로 끌어들입니다.

특별히 그들은 사람들의 진리에 대한 갈망을 이용합니다. 배우고 싶어 하는 마음을 자극하고 더 깊은 비밀을 알려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배울수록 오히려 진리에서 멀어지게 됩니다(7). 단지 지식을 쌓는 데만 몰두하고 삶의 변화가 없다면 그것 역시 탐심이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은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주어진 것인데, 사람은 자꾸 지식과 자랑의 도구로 삼으려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많이 배우고도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합니다(7). 말씀을 실천하려는 노력 없이 지식만 쌓으려 하면 결국 교만해질 뿐입니다. 성경 읽기의 횟수와 신앙훈련의 과정이 자랑거리가 되어 버리면 오히려 말씀의 본질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말씀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거짓 교사들을 얀네와 얌브레에 비유합니다(8). 그들은 모세를 대적하던 바로의 마술사들이었습니다(출 7:11-12). 처음에는 모세가 행한 이적을 흉내 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사람의 탐욕으로 행하는 일과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지는 역사는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차이가 드러납니다. 하나님 앞에 참된 경건이 없는 행위는 오래갈 수 없습니다. 껍데기만 있는 신앙은 결국 무너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알맹이 없는 신앙을 드러내시고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의 모양만 남은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배우는 데서 끝나지 말고 삶 속에서 실천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세상을 더 사랑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참된 경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삶 전체에 스며드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은 없는 신앙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예배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삶은 세상과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외형보다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 앞에서의 모습보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세속의 가치에 물들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넘어질 때에도 다시 돌이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하여 경건의 능력이 드러나게 하시고, 많은 사람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통로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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