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금) 거짓 선지자 아마샤에게 경고하다 / 아모스 7:10-17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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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1건 조회 33회 작성일 26-09-18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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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때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보내어 이르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

11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

12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13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

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15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16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네가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경고하지 말라 하므로

1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가운데서 창녀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네 땅은 측량하여 나누어질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의 땅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그를 모반죄로 고발합니다. 그는 여로보암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10). 아모스는 백성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킨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을 정치적인 음모로 왜곡하여 아모스를 위험한 인물로 몰아갔습니다.

아마샤는 벧엘의 제사장으로서 금송아지를 섬기는 제사를 주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사장이 아니라 북이스라엘의 왕권과 우상숭배의 제도를 유지하는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여로보암의 왕권에 기대어 자신의 지위와 생계를 보장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왕조와 성소의 멸망을 선포하는 아모스의 말씀은 아마샤에게 자신의 기반을 위협하는 공격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돌아보기보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아마샤는 아모스의 예언까지 교묘하게 바꾸어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서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9). 이는 여로보암 개인이 반드시 칼에 죽는다는 말씀이 아니라 그의 왕조가 칼로 심판받을 것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라고 전했습니다(11). 그는 여로보암의 집에 대한 심판을 여로보암 개인에 대한 암살 예고처럼 바꾸어 아모스를 반역자로 보이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다 보면 오해를 받거나 선한 의도가 악한 의도로 왜곡되기도 합니다. 진실하게 말씀을 전했는데도 사람을 해치려는 말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은 사람들의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말씀을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이 앞서면 그리스도의 종으로 충성하기 어렵습니다. 바울도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라고 물으며,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 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고백했습니다(갈 1:10).

아마샤는 왕에게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모스를 직접 몰아내려 했습니다. 그는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12-13). “선견자”라는 호칭은 겉으로는 아모스를 인정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그를 생계를 위하여 예언하는 직업적인 종교인으로 낮추어 부른 말이었습니다.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북이스라엘에서 돈을 벌지 말고 고향 유다로 돌아가 그곳에서나 예언하라고 조롱했습니다.

아마샤는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고 강조했습니다(13). 그는 벧엘을 하나님의 성소라고 부르지 않고 왕의 성소이며 나라의 궁궐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은 벧엘의 종교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지를 드러냅니다. 벧엘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 아니라 왕권을 보호하고 나라의 질서를 유지하는 종교 기관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아마샤 역시 하나님의 말씀보다 왕의 뜻을 높이고, 진리를 지키기보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했습니다.

교회는 국가와 특정 권력자의 소유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공동체입니다. 말씀을 맡은 사람이 세상의 권세와 결탁하여 자신의 안위를 도모한다면 진리를 온전히 선포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인정과 물질적인 유익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약하게 만들거나 듣기 좋은 말만 전한다면 아마샤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참된 사역자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교회가 그 말씀에 순종하기를 구해야 합니다.

아마샤의 말에 아모스는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라고 대답합니다(14). 이 말씀은 아모스가 현재 선지자가 아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본래부터 직업적인 선지자이거나 선지자 집단에 속하여 훈련받은 사람이 아니었으며, 예언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도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양을 돌보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며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모스가 선지자로 나선 것은 자신의 뜻이나 야망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라고 고백합니다(15). 아모스가 유다를 떠나 북이스라엘에서 말씀을 전한 이유는 그곳에서 떡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붙잡혔기 때문입니다. 그의 권위는 학문이나 경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말씀하시고 보내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습니다.

개혁주의 신앙에서 소명은 자신의 욕망을 종교적인 언어로 포장하는 일이 아닙니다. 소명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붙드셔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모든 성도에게는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소명이 있습니다. 특별히 말씀을 맡은 사람은 자신의 명예와 생계를 위하여 말씀을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충성스럽게 선포해야 합니다.

아모스는 자신의 사역을 막으려는 아마샤에게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고 선언합니다(16).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이스라엘을 향하여 예언하지 말라고 명령했지만, 아모스는 사람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아마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경고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제 아마샤 자신과 그의 가정을 향한 심판을 선포하십니다(16).

아마샤의 아내는 성읍 가운데서 수치를 당하고, 그의 자녀들은 칼에 쓰러지며, 그의 토지는 측량되어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질 것입니다. 아마샤 자신은 더러운 땅에서 죽고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게 될 것입니다(17). “더러운 땅”은 율법에 따른 정결한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이방 땅을 가리킵니다. 거룩한 제사장인 것처럼 행세하던 아마샤가 결국 우상숭배가 가득한 이방 땅에서 죽게 된다는 엄중한 심판입니다.

아마샤는 왕권의 그늘 아래 있으면 안전하리라 생각했지만 왕도 그를 지켜 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막고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 했으나 결국 가정과 재산과 생명까지 잃게 되었습니다. 반면 아모스는 가진 권세가 없었지만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대히 말씀을 전했습니다. 우리의 안전은 세상의 권력이나 자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람으로서 자신의 유익보다 진리를 사랑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정직하게 받들어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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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스님의 댓글

민스 작성일

샬롬
♡ 이옥희입니다
지난 며칠동안 제 마음에는 표현하기 힘든 심란함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붙잡고 있었고
주님을 믿는다하면서도 이러는 제가 싫었습니다.
내 안의 모든 생각들을 주님 앞에 내려
놓겠습니다.
어떤 상황에 감정적으로 받지 않고 말씀과
기도로 겸손과 화목의 대화로
우리 강남교회 공동체를 세워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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