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 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 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 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하여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 에게 더 이상 자세히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1). 이는 그들이 이미 여러 차례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 누구도 그 날과 그 시기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그 날과 그 때는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알지 못하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4:36). 그러므로 재림의 시점을 계산하거나 예측하려는 시도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일이 됩니다. 그러나 때와 시기는 알지 못하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하늘로 올려지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약속은 분명히 주어졌으며, 이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붙들었던 확실한 소망이었습니다(행 1:1).
바울은 주님의 재림이 어떤 방식으로 임할지를 설명하며, 그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것이라고 말합니다(2). 도둑은 예고하지 않고 찾아옵니다.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게 도둑의 방문은 손실과 두려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모든 것이 평안하다고 느끼며, 삶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 갑작스럽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평안하다, 안전하다"라고 말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멸망이 임한다고 바울은 경고합니다(3). 이는 세상이 주는 안정감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형편이 괜찮을 때 영원한 것을 잊어버리기 쉽고, 그 방심 속에서 주님의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경고를 곧바로 성도들에게 적용하지 않습니다. 그는 분명하게 선을 그으며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며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라고 증언합니다(4). 주님의 재림이 도둑 같이 임한다는 표현은 불신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지, 빛 가운데 거하는 성도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가리켜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선언합니다(5). 이 말씀은 성도의 정체성을 분명히 합니다. 성도는 어둠 속에서 방향을 읽은 존재가 아니라, 빛 가운데서 인도함을 받는 존재입니다.
밤과 어둠은 성경에서 종종 두려움과 혼돈. 죄와 무지의 상태를 상징합니다. 어둠에 속한 사람들에게 주님의 날은 공포의 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빛에 속한 자녀들에게 주님의 오심은 심판의 공포가 아니라, 기다려 던 분을 맞이하는 기쁨의 날입니다. 성도는 빛 되신 말씀 안에 거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언제 오실지를 계산하는 데 마음을 쏟기보다. 오늘 말씀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빛 가운데 거하는 삶을 살아갈 때. 주님의 오심은 두려 움이 아니라 승리의 완성이 될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 지라"고 권면합니다(6). 여기서 잠든다는 것은 육체적인 잠을 의미하기보다 영적으로 무감각해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죄에 익숙해지고. 분별력을 읽어버린 삶은 영적인 잠에 빠진 삶입니다. 바울은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라고 말하며, 어둠에 속한 삶의 특징을 드러냅니다(7). 지속적인 죄의 습관은 결국 영혼을 둔감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게 합니다.
빛의 자녀는 이러한 삶의 방식과 분명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성도가 깨어 있기 위해 영적인 군사처럼 무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고 권면합니다(8). 믿음과 사랑, 그리고 소망은 성도의 삶을 지키는 영적인 무기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이며. 사랑은 그 믿음이 삶으로 드러나는 열매입니다. 소망은 현재의 삶을 넘어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는 힘입니다. 이 세 가지가 무장되지 않으면. 성도는 어둠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성도가 왜 반드시 깨어 있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복음의 핵심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합니다(9). 성도의 삶의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이유는 심판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에 이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두려움으로 재림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확신 가운데 소망으로 그 날을 바라보는 존재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다시 상기시킵니다. 그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10). 여기서 깨어 있든지 자든지라는 표현은 살아 있든지 이미 죽었든지를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 있을 때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든지, 먼저 잠들었다가 그 날을 맞이하든지. 하나님의 뜻은 동일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이 땅의 시간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영원한 관점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도들에게 조급한 인생을 살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며 탐욕에 끌려 살아갈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잠시 머무는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지만. 그 삶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삶이기에 더욱 책임 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고 말합니다(11).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삶은 개인의 경건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세워 주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성도는 어둠을 비추는 작은 빛으로 세상 속에 존재합니다. 말과 행동. 선택과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 속한 자임이 드러나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은 어느 날 갑자기 임할 수 있지만, 빛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에게 그 날은 두려움이 아니라 완성의 날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깨어 살아가며, 빛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이어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이러한 삶은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증언이 되어, 어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도 소망의 빛을 비추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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