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목) 디모데전서 3:1-7 / 책망할 것이 없는 지도자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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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12회 작성일 26-02-19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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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사도 바울은 교회 공동체를 세워 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직분 가운데 하나인 감독에 대하여 말하며, 그 직분이 결코 가볍거나 명예로운 자리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그는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1). 여기서 말하는 선한 일은 사람의 눈에 좋아 보이는 일이나 세상적인 성취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선한 일이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 안에 머무는 삶이며, 결과보다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을 말합니다. 지도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당장은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여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을 붙드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성경이 수많은 이스라엘 왕들의 흥망성쇠를 기록하며 반복해서 증언하는 핵심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곧 형통이라는 사실입니다. 지도자가 선한 일을 사모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이나 계산을 앞세운다면, 그 영향은 개인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 전체를 죄악의 길로 끌고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자격을 논하기 전에, 그가 무엇을 사모하며 무엇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능력과 조건을 갖추었다 하여도 믿음에 파선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1:19).

바울은 이어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고 말합니다(2). 이 책망 없음은 완전무결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죄가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나 그의 삶이 일관되고 정직하여, 고의적으로 지적받을 만한 흠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감독의 삶은 사적인 영역에 머물 수 없습니다. 그의 말과 행동, 가정과 관계, 선택의 방향이 모두 공동체 앞에 드러나게 됩니다. 바울은 감독에 합당한 사람의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하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 절제하고 신중하며 단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2). 이는 일부일처의 원칙을 지키고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어야 함을 뜻하며, 동시에 정욕과 충동에 이끌리지 않고 영적으로 늘 깨어 있는 삶을 살라는 요청입니다. 지도자의 사생활이 무너지면 공적인 사역도 함께 무너집니다. 가정과 인격이 바로 서지 않은 지도자는 교회를 온전히 섬길 수 없습니다.

바울은 또한 감독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2). 나그네를 대접한다는 것은 단순한 친절을 넘어, 타인의 형편을 헤아릴 줄 아는 긍휼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지도자는 자신의 기준과 편의만을 앞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 있는 연약한 이들을 품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가르치기를 잘하라는 말 역시 말솜씨나 지식의 많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가르침은 삶으로 드러나는 가르침입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본받고 싶게 만드는 삶이 참된 가르침입니다. 그러기 위해 지도자는 끊임없이 말씀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배우는 자의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가르친다는 이유로 성장을 멈추는 순간, 지도자는 이미 가르침의 자격을 잃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울은 감독이 술을 즐기지 아니하고 구타하지 아니하며 관용하고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여야 한다고 덧붙입니다(3). 이는 지도자의 내면을 드러내는 중요한 기준들입니다. 술을 즐긴다는 것은 절제를 잃는 삶을 의미하며, 구타와 다툼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관용은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품을 줄 아는 마음이며, 다투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관계를 희생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특히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은 지도자의 마음이 어디에 붙들려 있는지를 점검하게 합니다. 돈은 필요하지만, 사랑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을 사랑하게 되는 순간, 지도자는 사람을 수단으로 삼게 되고 공동체를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킬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지도자는 말로 믿음을 요구하기 전에, 자신의 삶으로 먼저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감독이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여야 한다고 말합니다(4). 가정은 교회의 축소판이며, 교회는 가정의 확장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교회도 건강할 수 없습니다. 가정 안에서조차 평강과 질서가 세워지지 않는 사람이 교회라는 더 큰 공동체를 온전히 섬기기는 어렵습니다. 바울은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라고 반문합니다(5). 이는 지도자의 사역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을 외적인 성과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삶의 모습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가정에서의 신실함과 인내, 사랑과 책임감은 교회 사역의 기초가 됩니다.

바울은 또한 새로 입교한 자를 감독으로 세우지 말라고 경고합니다(6). 이는 새신자를 무시하거나 배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의 연륜이 충분히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도자의 자리에 오를 경우, 교만에 빠질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지도자를 가장 빠르게 무너뜨리는 함정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되며,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지도자는 사람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사람 아래에서 섬기는 자입니다. 소명의식과 지도력은 통제에서 나오지 않고, 섬김과 인내에서 드러납니다.

바울은 감독이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는 자여야 한다고 말합니다(7). 교회의 지도자는 교회 안에서만 존경받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신뢰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의 평판은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지만, 복음의 신뢰성과 직결된 중요한 요소입니다. 지도자의 삶이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된다면, 복음 역시 함께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이유로 마귀의 올무에 빠지지 않도록 늘 자신을 살피라고 경고합니다(7). 마귀는 늘 믿음이 연약한 틈을 노리며, 방심하는 순간 넘어뜨립니다(벧전5:8). 그러므로 지도자는 누구보다 먼저 깨어 있어야 하며,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이 모든 기준은 지도자를 완벽한 존재로 만들기 위한 요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겸손히 살아가도록 이끄는 기준입니다. 책망할 것이 없는 지도자란 흠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라, 흠을 숨기지 않고 말씀 앞에서 회개하며 다듬어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지도자는 능력보다 인격을, 성과보다 신실함을, 외형보다 중심을 보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지도자의 자리에 있든 그렇지 않든, 나의 삶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증거가 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선한 일을 사모하며, 책망할 것이 없는 삶을 향해 날마다 자신을 살피는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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