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10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14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교회의 직분에 대해 말하면서, 직분의 기능적인 측면보다 직분을 맡은 사람이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더욱 중요하게 다룹니다. 먼저 집사에 대하여 “정중하고 일구이언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는 자”여야 한다고 말합니다(8). 집사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들이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도록 돕기 위해 세워진 직분으로,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교회의 실제적인 필요를 감당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러므로 집사의 삶은 교회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성도들의 삶과 맞닿아 있으며, 그만큼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공동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정중하다는 것은 사람을 대할 때 경솔하지 않고 무게감 있게 행동하며,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삶에 배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일구이언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거나 이 사람에게 한 말과 저 사람에게 한 말이 달라 공동체에 혼란을 주지 않는 신실함을 뜻합니다. 집사는 신뢰를 쌓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경솔하게 말하여 관계를 무너뜨려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또한 집사가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해야 한다고 말합니다(8). 이는 절제와 정직의 문제를 다루는 말씀입니다. 술에 인박힌다는 것은 자기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를 의미하며, 더러운 이를 탐한다는 것은 부정한 방법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마음을 말합니다. 집사는 교회의 재정과 섬김의 현장에 깊이 관여하는 직분이기에, 그 마음이 탐욕에 사로잡힐 경우 공동체 전체가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집사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봉사 이전에, 내면의 욕심과 충동을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자가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고 말합니다(9). 깨끗한 양심이란 죄가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숨길 것이 없는 정직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비밀을 가진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러난 구원의 신비를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붙들고 살아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집사는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 복음이 실제이며 능력이라는 사실을 증거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집사의 기준은 교회 안에서 맡은 역할에만 국한된 윤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집사가 교회 안팎의 모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자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함을 뜻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충성스럽게 봉사하지만, 교회 밖에서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면 그 직분은 이미 신뢰를 잃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이라는 사실은 예배당 안에서만 유효한 정체성이 아니라, 일상 전체를 관통하는 정체성입니다. 집사의 삶은 말로 설명되는 직분이 아니라, 삶 자체로 설명되는 직분이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직분자를 세울 때에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기라고 말합니다(10). 시험하라는 말은 의심을 가지고 사람을 달아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시간 속에서 그의 삶을 지켜보며, 진실한 마음으로 교회를 섬길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분별하라는 의미입니다. 직분은 감정이나 인기, 혹은 일시적인 열심으로 맡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문이나 개인적인 호감에 따라 사람을 세우는 것은 교회를 위태롭게 합니다. 바울은 직분자를 세울 때, 교회 안에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의 언행까지도 살펴보아야 함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삶의 자리에서 섬김의 태도가 일관되게 드러나는 사람이야말로 직분을 맡길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여자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는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고 모든 일에 충성해야 한다고 말합니다(11). 이는 특정 성별을 제한하거나 차별하려는 말씀이 아니라, 교회의 직분을 맡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영적 기준 아래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정숙하다는 것은 경솔하지 않고 절제된 태도를 말하며, 모함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로 사람을 해치지 않는 신중함을 뜻합니다. 절제와 충성은 직분자의 기본적인 삶의 토대입니다. 바울은 감독이든 집사든, 남자든 여자든,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고 가정에 충실하며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동일한 원리를 제시합니다(3:1-5). 직분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며, 높아짐이 아니라 더욱 엄격한 자기 관리로 부름 받는 자리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직분을 잘 감당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지위와 믿음에 큰 담력”을 주신다고 말합니다(13). 아름다운 지위란 사람의 칭찬이나 명예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자리이며, 공동체 안에서 신뢰를 얻는 위치를 말합니다. 믿음의 담력은 어려움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진리를 붙들 수 있는 영적인 담대함입니다. 이러한 담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충성된 섬김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을 맡은 사람은 드러나는 결과보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의 신실함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모든 직분에 대한 가르침의 목적을 교회의 본질로 연결합니다. 그는 교회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임을 알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15). 바울이 에베소에 직접 가지 못하고 먼저 이 편지를 보낸 이유도, 자신이 없는 동안 교회가 사역과 직분을 통해 진리의 견고함을 실제로 경험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1:3). 기둥은 집 전체를 떠받치는 역할을 하며, 터는 모든 구조의 시작이 되는 기반입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는 조직이 아니라, 진리를 떠받치고 생명을 품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이 바로 서지 않으면, 그 기둥은 흔들리고 터는 무너지게 됩니다.
바울은 이어서 경건의 비밀을 찬송의 형태로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만국에서 전파되셨으며, 세상에서 믿은 바 되셨고, 영광 가운데 올려지셨다는 고백입니다(16). 이는 복음의 핵심을 요약한 선언이며, 교회가 붙들어야 할 믿음의 중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사건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신 결정적인 사건이며, 그분의 부활과 승천은 죽음이 생명으로 바뀐 신비의 역사입니다. 교회는 이 경건의 비밀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도록 부름 받은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세상 가운데 있으나 세상과 구별된 존재입니다. 그 구별은 외적인 형식이나 배타적인 태도에서 나오지 않고, 삶으로 드러나는 복음의 능력에서 나옵니다. 직분자들의 신실한 삶은 곧 교회의 증거가 되며, 교회의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게 됩니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교회를 세우시고 세상 가운데 빛을 비추십니다. 이 말씀 앞에서 직분의 유무를 떠나, 나의 삶이 교회의 기둥을 세우는 방향으로 쓰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깨끗한 양심과 믿음의 비밀을 품고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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