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화) 디모데전서 5:1-16 / 교회 안에서 가족과 같이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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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12회 작성일 26-02-24 05:40

본문

 1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2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3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5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7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9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가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10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11 젊은 과부는 올리지 말지니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 가고자 함이니

12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13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14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15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16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 주게 하려 함이라



삶의 자리에서 우리는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그 관계가 깊어질수록 오히려 상처와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같은 공간에 머물러 있어도 마음은 쉽게 닫히고, 서로의 형편과 차이를 기준 삼아 거리를 두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예외가 아니어서, 믿음으로 하나 되었다고 말하면서도 각자의 삶은 분리된 채 유지될 때가 적지 않습니다. 바로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를 기능과 역할로 엮인 집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 형제와 자매로 연결된 한 가족 공동체로 살아가야 할 존재로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같은 예배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서로를 가족처럼 대하기보다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모였지만 마음은 쉽게 닫히고, 나이와 형편, 역할의 차이에 따라 말과 태도가 달라질 때도 적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이해관계로 관계가 형성되고 유지되지만, 교회마저 그러한 기준에 익숙해질 때 공동체는 점점 차가워지고 사랑은 형식으로 남게 됩니다. 이러한 삶의 현실 속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를 조직이나 제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아버지를 모신 가족 공동체로 이해하도록 이끌며, 성도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고 권면합니다(1-2). 이 말씀은 교회 안에서의 관계가 기능이나 위치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정체성 위에 세워져야 함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하듯 한다는 것은 존중과 공경을 전제로 한 태도를 말하며, 형제와 자매에게 하듯 한다는 것은 경쟁이나 비교가 아니라 동등한 사랑과 연대를 의미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위계로 유지되는 집단이 아니라, 서로를 세워 주는 사랑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조차 세상적인 권위와 서열을 앞세우는 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바울의 권면은 지도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는 교회 안에서 서로의 삶을 보살피고 책임지는 가족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누군가의 연약함을 책망으로 눌러버리는 것이 아니라, 권면으로 세워 주어야 하며, 상대의 연약함을 이용하거나 판단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먼저 묻기보다, 내가 누구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연약한 지체를 가족처럼 품고 있는지, 아니면 불편하다는 이유로 마음에서 밀어내고 있는지 스스로를 살피게 됩니다.

바울은 이어서 과부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언급하며, 신앙 공동체가 실제적인 돌봄의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는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고 말합니다(3). 여기서 존대하라는 말은 단순한 예의 차원의 존중이 아니라, 공동체가 책임을 지고 돌보아야 할 대상임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참 과부를 남편도 없고 의지할 가족도 없지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항상 기도하는 자로 설명합니다(5). 이는 경제적 조건만이 아니라 신앙의 태도까지 함께 고려한 정의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고아와 과부의 보호자가 되신다고 증언합니다(사1:17). 또한 하나님께서는 과부를 억울하게 하지 말라고 분명히 명령하셨습니다(신10:18). 초대교회가 일곱 집사를 세운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과부들을 공평하게 돌보기 위함이었습니다(행6:1-6). 당시 사회는 경제적으로 매우 불안정하였고, 남편을 잃은 과부들은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극심한 빈곤으로 인해 부도덕한 선택의 유혹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교회는 단순히 말씀만 전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삶을 지켜 주는 공동체로 서야 했습니다.

바울이 향락을 좋아하여 살았으나 죽은 자라고 표현한 것은, 도덕적 판단을 넘어 생존의 위기 속에서 신앙과 삶이 무너진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외면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진리로 다시 세우고 실제적인 돌봄으로 붙들어 주어야 할 책임을 지닌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과부들을 믿음 안에 굳게 서도록 돕고,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은 교회의 중요한 사역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돌봄이 무질서나 오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과부 명부에 대한 기준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9-16). 과부 명부에 올릴 자는 육십 세가 넘고 한 남편의 아내였으며,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고, 자녀를 양육하고 나그네를 대접하며 성도의 발을 씻고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선한 일을 행한 자여야 했습니다(10). 이는 과부를 단순히 도움을 받는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교회 안에서 중요한 영적 자산으로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랜 삶의 경험과 신앙의 경륜을 가진 이들이 공동체 안에서 영적인 유익을 끼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젊은 과부를 명부에 올리지 말라고 권면합니다(11). 이는 그들을 배제하거나 가치 없게 여기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들의 삶의 자리 또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역의 현장임을 인정하는 말씀입니다. 재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집을 다스리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귀한 사명입니다(14). 교회 안에서 모든 사역이 동일한 형태일 수는 없으며, 각 사람에게 맡겨진 사명은 그 삶의 자리에서 다르게 나타납니다.

바울의 이 모든 권면은 교회 안에 불필요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하나님 앞에서 귀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공동체를 세워 가는 중요한 지체입니다. 교회는 젊은 자와 나이 든 자, 강한 자와 약한 자, 돕는 자와 도움을 받는 자로 나뉘는 곳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가족 공동체입니다. 지도자는 이러한 시각으로 공동체를 바라보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살피고 세워야 합니다.

교회가 가족과 같은 공동체로 살아간다는 것은 감정적인 친밀함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책임과 희생, 존중과 인내를 포함한 관계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하듯 공경하고, 형제와 자매를 대하듯 사랑하며, 연약한 지체를 외면하지 않는 공동체가 될 때 교회는 비로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의 질서가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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