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 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 나느니라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 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 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삶은 언제나 말씀 앞에 자신을 세우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의 경험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어느새 말씀보다 자기 생각을 앞세우고. 경건보다 유익을 따지며. 진리보다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려는 유혹 앞에 서게 됩니다. 처음에는 작은 의견 차이로 시작되지만. 그것이 반복되고 쌓이면 마음은 점점 거칠어지고 공동체는 쉽게 분열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며, 디모데에게 경건에 관한 교훈에서 결코 멀어지지 말 것을 간곡히 당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바른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낳는지를 분명히 지적합니다. 그는 다른 교훈을 따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상태를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3). 그들은 스스로를 높이고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변론과 언쟁을 즐기는 자들입니다. 여기 서 바울이 말하는 무지는 지식의 부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식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진리를 진리로 분별할 수 있는 영적 눈이 흐려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말씀 앞에서 침묵하지 못하고. 언제나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려 하며. 상대를 설득하거나 이기기 위해 논쟁을 반복합니다. 그 결과 공동체 안에는 시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끊이지 않게 됩니다(4). 그리고 교회는 생명을 살리는 자리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바울은 언쟁과 분열이 성격의 문제나 의견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자신을 복종시키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교회를 바라보고 판단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경건에 이르는 삶은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삶이며, 말씀이 나를 판단하도록 내어 드리는 삶입니다. 그러나 경건에서 멀어진 마음은 반대로 말씀을 도구로 삼아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려 합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교회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일 뿐,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공동체로 기능하지 못하게 됩니다. 바울이 경고하는 것은 단순한 질서 문제나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아니라. 진리가 중심에서 밀려날 때 교회가 감당해야 할 근본적인 위기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진리를 잃은 자들의 내면 상태를 더욱 깊이 파헤칩니다. 그는 마음이 부패하여 진리를 잃은 사람들이 경건을 이익의 수단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5). 여기서 경건은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의 삶의 태도가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신앙이 본래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야 할 길이라면, 이들은 하나님을 이용해 자신의 만족과 성공을 얻으려는 방향으로 신앙을 왜곡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이익은 반드시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명예와 영향력, 인정과 안정감, 심지어는 영적인 우월감까지 포함됩니다. 경건이 이익의 수단이 될 때,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보다 경건 자체를 더 붙들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의 현실도 그렇습니다. 교회를 선택할 때, 말씀의 진실성과 복음의 중심을 먼저 묻기보다,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내 삶에 어떤 유익을 줄 수 있는지를 앞세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가 마치 삶의 질을 높여 주는 공간처럼 인식될 때, 경건은 자기만족을 위한 장식물로 취급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진리를 잃은 경건은 결국 사람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깊은 욕망과 불만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참된 진리는 나를 사랑하되 나에게 머물게 하지 않고 이웃과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게 합니다. 반면 거짓된 지식은 나만을 중심에 두고 다른 이들을 판단하거나 비교하는 기준으로 작동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길로 자족함을 강조합니다. 그는 자족하는 마음이 있는 경건은 큰 이익이 된다고 말합니다. 자족은 상황에 대한 체념이나 욕망의 억눌림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이미 충분하다는 인식 에서 비롯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구원과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이 삶의 중심에 놓일 때, 사람은 환경이 변해도 흔들리지 않는 만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자족은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가 아니라, 현실을 하나님 앞에서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자족하지 못한 마음은 결국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 흐름이 탐심으로 이어진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탐심은 단순히 더 가지려는 욕구가 아니라,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신뢰하려는 마음의 방향 전환입니다. 야고보가 말한 것처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습니다(약1 :15). 처음에는 작은 불만과 아쉬움으로 시작되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사람은 점점 무리한 선택을 하게 되고, 결국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할 욕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바울은 이러한 과정을 매우 현실적으로 경고하며 경건에서 멀어진 삶이 결코 중립적인 상태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바울은 인생의 근본적인 사실을 다시 상기시킵니다. 그는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7). 이 고백은 인생의 허무를 강조하려는 말이 아니라. 무엇이 참으로 영원한 가치인지를 분별하게 하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고. 죽을 때에도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손에 쥔 것이 삶의 전부가 될 수 없으며, 그것에 인생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고 권면합니다(8). 이 말씀은 궁핍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경건의 중심이 물질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음을 선언하는 말입니다.
자족하지 못한 마음의 틈을 타 돈을 향한 욕망이 파고듭니다. 바울은 부하려 하는 자들이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진다고 말합니다(9). 돈 자체를 악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돈은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수단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을 섬기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전회 다른 결과를 남습니다.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하며. 이 욕망이 사람으로 하여금 믿음에서 떠나게 하고 많은 근심으로 자신을 찌르게 한다고 경고합니다(10). 돈을 물드는 손이 점점 더 강해질수록.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손을 놓게 됩니다. 그 결과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고 근심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바울의 이 권면은 삶의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경건은 삶의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모든 선택과 판단의 기준이 도 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서 멀어질수록. 사람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하지만, 역설적으로 만족은 줄어들게 됩니다. 반대로 말씀 앞에 자신을 복종시키며 경건을 지켜 가는 삶은, 비록 환경이 넉넉하지 않아도 깊은 평안과 자유를 누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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