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금) 디모데전서 6:11-21 /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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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10회 작성일 26-02-27 05:29

본문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20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21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우리는 믿음으로 산다고 고백하면서도 현실의 압박 앞에서 흔들리고, 세상의 기준이 더 합리적으로 보일 때가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삶의 자리에서 신앙은 관념이 아니라 싸움이 되며, 내 안의 욕심과 두려움, 조급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선택을 요구받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한 “믿음의 선한 싸움”은 바로 이러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매우 개인적이면서도 결정적인 호칭으로 말을 시작합니다. 그는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르며 디모데의 정체성을 분명히 합니다(11). 이 호칭은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니라, 디모데가 누구에게 속한 자이며 어떤 기준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인지를 다시 새겨 주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할 책임과, 세상의 흐름과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야 할 소명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욕심과 계산을 앞세워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며, 언제나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자신을 맞추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앞선 본문에서 돈을 사랑함으로 인해 믿음에서 떠난 사람들의 모습을 경고한 후, 이제 디모데에게는 그 길과 분명히 구별된 삶을 살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욕심으로 가득 찬 길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11). 이것은 덕목의 나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자체를 닮아가라는 부르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의와 경건, 사랑과 온유는 마음에 품는 소원만으로 생겨나지 않으며, 실제 삶의 자리에서는 끊임없는 갈등과 충돌 속에서 선택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본성은 억울함 앞에서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공격받을 때 방어하거나 되갚아 주고 싶어 합니다. 분노를 억누르고, 모욕을 견디며, 손해를 감수하는 선택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패배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이러한 삶의 방식을 “믿음의 선한 싸움”이라고 부릅니다(12). 이 싸움은 다른 사람을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싸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기 위해 자신의 옛 사람과 싸우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바로 이 싸움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으며,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한 자임을 상기시킵니다(12). 신앙은 고백으로 시작되지만, 그 고백은 반드시 삶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포기하는 순간, 신앙은 말로만 남게 되고 증언의 힘을 잃게 됩니다.

바울은 이 싸움이 결코 헛된 싸움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물을 살게 하시는 이”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신 이”로 증거하며, 디모데 역시 그 길을 따르고 있음을 일깨웁니다(13).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사신 삶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손해와 패배의 연속처럼 보였지만, 그 길 끝에는 부활과 영광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이르라고 권면합니다(14). 신앙의 싸움은 단기간의 결단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이어져야 할 지속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세상의 성공이나 물질적인 성취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믿음의 싸움 속에서 다듬어진 삶은 영원한 가치로 남게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로,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로 찬양합니다(15). 이 고백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는 힘 있는 자가 권력을 쥐고, 가진 자가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바울은 그 모든 위에 계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죽지 아니하심과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 분이시며, 어떤 사람도 본 적이 없고 볼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16). 이러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인식이 있을 때, 사람은 눈앞의 이익에 휘둘리지 않고 영원한 기준으로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믿음의 싸움은 결국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믿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주권자이시라면, 지금의 손해와 억울함도 그분의 손 안에 맡길 수 있게 됩니다.

바울은 이어서 이 땅에서 부유하게 사는 자들을 향한 권면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그는 재물이 있는 자들에게 교만하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경고합니다(17). 재물은 잠시 삶을 편리하게 해 줄 수는 있지만, 결코 참된 안전과 만족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재물이 많아질수록 마음은 불안해지고,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은 커지게 됩니다. 바울은 재물이 아니라,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권면합니다(17). 재물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만이 재물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부유한 자들에게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며, 나누어 주기를 즐겨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18). 중요한 것은 재물을 소유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재물이 누구를 위해 사용되고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과 재능을 자신만을 위해 쌓아 두는 사람은 결국 그것에 묶이게 되지만,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나누는 사람은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바울은 이러한 삶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19). 이는 믿음으로 사는 삶이 자연스럽게 맺게 되는 열매를 가리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눈에 보이는 열매보다, 그 열매를 맺게 하는 터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디모데에게 매우 절박한 당부를 남깁니다. 그는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하라”고 권면합니다(20). 진리는 논쟁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증거 될 때 더욱 분명해집니다. 자신의 말이 옳음을 증명하려는 데에 집착할수록, 사람은 쉽게 사랑을 잃고 경건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바울은 이미 어떤 사람들이 이러한 거짓된 지식을 따르다가 믿음에서 벗어났음을 안타까워하며 경고합니다(21). 그러기에 디모데에게 요구되는 마지막 사명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맡겨진 진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권면의 끝에서 바울은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는 축복으로 편지를 맺습니다(21). 믿음의 선한 싸움은 인간의 결단과 의지로만 감당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닙니다. 은혜가 함께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끝까지 이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한 싸움은 고독한 투쟁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며, 결국 은혜 안에서 완성되어 가는 여정임을 깊이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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