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님의 댓글
정현 작성일
샬롬
깨달은점
----) 내 상황에 맞춰서 하나님을 여러의미로 두지 않겠습니다. 어떠하심이 아니라 하나님만으로 충분함을 항상 고백해야합니다.
실천하기
---) 어떠한 상황에서든 감사로 시작하겠습니다. 조그마한 일이라도 감사부터하겠습니다.

1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2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보라 나는 늙어 머리가 희어졌고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3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하니
4 그들이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누구의 손에서든지 아무것도 빼앗은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
5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손에서 아무것도 찾아낸 것이 없음을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며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도 오늘 증언하느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가 증언하시나이다 하니라
6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을 세우시며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는 여호와이시니
7 그런즉 가만히 서 있으라 여호와께서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행하신 모든 공의로운 일에 대하여 내가 여호와 앞에서 너희와 담론하리라
8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후 너희 조상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사 그 두 사람으로 너희 조상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곳에 살게 하셨으나
9 그들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은지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하솔 군사령관 시스라의 손과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넘기셨더니 그들이 저희를 치매
10 백성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김으로 범죄하였나이다 그러하오나 이제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하매
11 여호와께서 여룹바알과 베단과 입다와 나 사무엘을 보내사 너희를 너희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사 너희에게 안전하게 살게 하셨거늘
12 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13 이제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
14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의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마는
15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조상들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요구대로 왕을 세우셨지만, 그 선택을 기뻐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하던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것이 불신앙에서 비롯된 선택임을 분명히 아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왕이 되어 다스리시는 신정 통치 아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들과 같이 눈에 보이는 왕을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이 그 요구를 기뻐하지 않는 것을 보시며, 그것이 사무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버린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8:6-8).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선택한 길을 허락하셨습니다. 이는 방임이 아니라 교육이었고, 포기가 아니라 깨닫게 하시려는 인도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원한 왕으로 인해 겪게 될 고통을 통해, 오직 여호와만이 참된 왕이시며 통치자이심을 알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누구보다 깊이 알고 있었던 사무엘은 마지막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붙들고 설득하였습니다. 그는 왕을 세우는 일이 하나님의 본래 뜻이 아님을 반복해서 말하였고, 그럼에도 백성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사무엘은 이스라엘 앞에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보라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이니라”고 선언하며, 왕을 세운 책임이 백성 자신들에게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13). 이 말은 축복의 선언이 아니라 책임의 선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왕과 백성이 함께 여호와를 따를 것을 권면하면서도,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그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조상들을 치셨던 것 같이 임할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합니다(14-15). 이는 왕이라는 제도가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은 상태에서 세워진 왕은, 보호의 울타리가 아니라 또 하나의 억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지도자를 흠모하고 따르는 길은 결국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길이 됩니다.
사무엘은 이제 이스라엘이 잊고 있었던 과거를 다시 불러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셨는지를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그들을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블레셋과 여러 대적들 가운데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여룹바알과 베단과 입다와 사무엘을 세우셔서 사방의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 주셨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수 있었습니다(6-11). 이는 이스라엘이 잘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푸신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은혜를 오래 붙들지 못했습니다. 고통이 사라지면 하나님을 잊었고, 다시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며 죄의 길로 돌아갔습니다(9). 그들은 환난 중에는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라고 부르짖었지만, 구원을 받으면 다시 자기 뜻대로 살아갔습니다(10).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셨고, 반복해서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의 죄는 이전과는 다른 깊이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를 침략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사람 왕을 요구했습니다(12). 심지어 야베스 사람들은 “만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고 말하며 암몬에게 사실상의 항복을 선언했습니다(11:3). 그들의 입술에는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이 없었습니다. 사무엘은 이 모습을 두고, 이스라엘이 결국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이 되었다고 말합니다(9). 하나님을 떠난 길은 한 번의 선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 번 떠난 길은 반복되고, 반복된 선택은 결국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로 사람을 이끌어 갑니다.
사무엘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려 오셨는지를 증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이 아니라 선지자를 세우셔서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통치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지금까지 이스라엘 가운데서 정직하게 행하였음을 백성 앞에 고백합니다(1-5). 그는 누구의 소나 나귀를 빼앗은 적도 없고, 누구를 압제하거나 뇌물을 받은 적도 없었습니다. 이 고백은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이루신 통치가 결코 부족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사무엘의 말이 참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4-5).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자신들을 인도하신 방식이 옳았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무엘은 선언합니다. “너희가 구한 왕이 이제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고 말하며, 이스라엘이 스스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다른 길을 선택했음을 분명히 합니다(2). 이는 이제 그들이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신정 통치와, 사람 왕을 통한 정치적 통치의 차이를 직접 경험하게 될 것임을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통치 방식은 이미 충분했고,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늘 “더 나은 것”을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은혜와 보호를 가볍게 여기고, 다른 나라들이 가진 제도를 더 나은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이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의 자리에서도 반복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믿음의 자리보다, 눈에 보이는 조건과 환경을 더 나은 것으로 여기며 그것을 붙들려고 할 때, 사람은 스스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선포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사 40:31). 더 나은 것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믿음,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그 자리가 가장 나은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할 더 나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삶보다 안전한 길은 없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는 통치보다 완전한 질서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것을 원했고, 그 선택의 책임을 스스로 감당해야 했습니다. 사무엘의 이 마지막 권면은 책망이면서도 동시에 회복의 길을 열어 둔 말씀입니다. 왕이 세워졌어도, 여전히 여호와를 따를 수 있으며, 여전히 하나님의 손 아래에 머물 수 있다는 소망을 함께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4-15).
내게 더 나은 것을 찾으려는 마음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신앙은 그 본성을 거슬러 이미 내게 있는 은혜를 바라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나의 왕이 되시고, 말씀으로 인도하시며, 지금까지 지켜 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믿음의 자리입니다. 더 나은 것을 찾아 헤매기보다, 이미 주어진 가장 나은 것을 붙드는 것이 신앙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그 가장 나은 것은, 지금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통치 아래 머무는 삶입니다.
샬롬
깨달은점
----) 내 상황에 맞춰서 하나님을 여러의미로 두지 않겠습니다. 어떠하심이 아니라 하나님만으로 충분함을 항상 고백해야합니다.
실천하기
---) 어떠한 상황에서든 감사로 시작하겠습니다. 조그마한 일이라도 감사부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