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우리는 고난주간 둘째 날을 맞이하면서, 여전히 일상의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살고, 익숙한 길을 걷고, 반복되는 책임과 걱정 속에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우리 역시 각자의 홍해 앞에 서 있는 순간들을 살아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선택의 자리, 뒤에서는 현실의 문제들이 몰려오고, 어디로도 쉽게 갈 수 없는 막다른 길 같은 시간들이 우리의 삶에도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는 믿음으로 서기보다, 불평으로 먼저 반응하고, 기도로 나아가기보다 두려움에 먼저 흔들리며, 하나님의 뜻보다 눈에 보이는 상황을 더 크게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난주간 둘째 날은 바로 이러한 삶의 자리에서, 우리가 다시 묻게 하시는 날입니다.
우리가 고난주간의 둘째 날을 맞는 것은 십자가를 향해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실 때, 그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주권이 분명히 드러나는 길이었습니다. 고난주간 첫째 날에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 주님은, 이제 환호가 점점 식어 가는 도시 한가운데서 침묵으로 십자가의 길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 둘째 날은,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보다 마음의 방향이 더 분명히 드러나는 날이며, 믿음이 진짜인지 시험받는 날입니다. 하나님이 여신 길은 언제나 사람의 기대와 어긋나고, 그 길을 걷는 사람의 믿음을 깊은 자리까지 데려갑니다.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뜻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뒤에서 다가오는 바로의 군대를 보며 “심히 두려워하여” 모세를 원망합니다(10). 이 두려움은 공포감으로 인해 위축되거나 피하려는 심리적 현상이아니라,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것 같은 절망이었습니다. 앞에는 바다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는 군대가 다가오고,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자리에서 그들은 모세에게 외칩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는 이 말은, 광야의 두려움이 아니라 자유의 길을 포기하겠다는 고백이었습니다(11). 그리고 그들은 차라리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고 말합니다(12). 하나님의 구원보다 눈앞의 위기가 더 크게 보일 때, 사람은 가장 쉽게 다시 종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모세를 향한 원망은 사실 모세를 세우신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었습니다.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분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5:21). 그들은 이미 장자 재앙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고, 피로 구별된 밤을 지나왔으며,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8).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군대의 위용 앞에서, 그 모든 은혜는 한순간에 잊혀졌습니다. 믿음은 과거의 기억으로 유지되지 않고, 현재의 위기 앞에서 다시 선택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모습은 곧 오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고 말하면서도, 현실의 고통 앞에서는 쉽게 낙심하고, 자유의 길보다 익숙한 종의 자리를 더 안전하게 여깁니다.
이때 모세는 백성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명령합니다(13). 이 말은 상황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다시 약속으로 돌아오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감정을 억누르라는 뜻이 아니라, 믿음을 회복하라는 말이었습니다. “구원을 보라”는 말은 애굽의 병거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초대였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불평을 멈추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남을 탓하는 말이 아니라, 내 믿음을 점검하는 일이었습니다.
사흘이 지나자 바로는 이스라엘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깨닫고 그들을 보낸 것을 후회합니다(5). 그는 병거를 갖추고, 특별히 선발한 육백 대의 병거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추격합니다(7). 그 숫자와 위용은 이스라엘 백성의 눈을 압도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들은 여러 번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음에도, 눈앞에 보이는 군사력 앞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싸우실 것임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같은 상황 속에서 모세는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고 단언합니다(14). 백성은 두려움 속에 흔들리고 있었지만, 모세는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 있었습니다.
고난주간 둘째 날, 우리는 이 장면을 주님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과 함께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신 뒤, 제자들의 마음에도 두려움이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걸어가시는 길은 점점 더 위험해 보였고, 사람들의 태도는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홍해 앞에서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도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길이 없던 곳에 길이 열리고, 혼돈과 공포 속에서 평안과 승리가 주어집니다. 이스라엘에게는 갈라진 바다가 생명의 길이 되었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애굽에게는 사망의 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고 하시며, 앞으로 나아가 지팡이를 들어 바다 위로 손을 내밀라고 명령하십니다(15, 16). 기도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순종으로 나아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확신이 있다면, 기도만 할 때가 아니라, 담대히 발을 떼야 할 때가 있습니다.
고난주간 둘째 날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우리가 여전히 홍해 앞에 서 있는 날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아직 멀게 느껴지고, 두려움은 여전히 크며, 하나님이 여신 길은 여전히 좁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같은 말씀을 주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말하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길을 여십니다. 그리고 그 길은 언제나, 하나님이 여신 길이며, 사람이 믿음으로 걸어야 할 길입니다.
우리는 우리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지금 내 삶의 홍해는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나는 그 앞에서 불평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신 길 위에 오늘도 조용히 발을 올려놓는 자만이, 마침내 하나님의 구원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우리는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이 길은 내가 연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신 길이었고, 나는 그 길을 걸었을 뿐이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