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님의 댓글
정현 작성일
샬롬...
믿음의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그러한 환경안에 있음을 감사하고 가정과 내가 속한 어떤 공동체든지 믿음의 환경을 만들며 살아가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방향이 무엇인지 항상 여쭤보며 나의 환경들을 만들겠습니다.

12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라 하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이새는 사울 당시 사람 중에 나이가 많아 늙은 사람으로서 여덟 아들이 있는 중
13 그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으니 싸움에 나간 세 아들의 이름은 장자 엘리압이요 그 다음은 아비나답이요 셋째는 삼마며
14 다윗은 막내라 장성한 세 사람은 사울을 따랐고
15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베들레헴에서 그의 아버지의 양을 칠 때에
16 그 블레셋 사람이 사십 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몸을 나타내었더라
17 이새가 그의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지금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영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18 이 치즈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
19 그 때에 사울과 그들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는 중이더라
20 다윗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이새가 명령한 대로 가지고 가서 진영에 이른즉 마침 군대가 전장에 나와서 싸우려고 고함치며,
21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람들이 전열을 벌이고 양군이 서로 대치하였더라
22 다윗이 자기의 짐을 짐 지키는 자의 손에 맡기고 군대로 달려가서 형들에게 문안하고
23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전열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
24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25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너희가 이 올라 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의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버지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세금을 면제하게 하시리라
26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27 백성이 전과 같이 말하여 이르되 그를 죽이는 사람에게는 이러이러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성경은 다윗을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의 아들”로 소개합니다(12). 베들레헴은 스불론 지파가 분배받은 베들레헴과는 다른 곳으로서(수19:15), 훗날 선지자 미가를 통하여 메시야가 나실 곳으로 예언된 땅이기도 합니다(미5:2). 이는 다윗의 삶이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구속사적 흐름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 줍니다. 베들레헴 에브랏의 토박이인 이새의 아들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고, 동일한 땅에서 메시야가 나신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한 개인의 삶을 통하여 오랜 시간 동안 당신의 뜻을 준비하시고 성취하신다는 것을 증거 합니다. 다윗은 사울에 이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지만, 사울이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제비뽑아 세워진 왕이었다면(8:5, 10:20-21), 다윗은 온전히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었습니다(16:12). 그러므로 신정통치는 사실상 다윗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성경은 이 두 왕을 처음부터 분명히 구별하여 묘사합니다. 사울에 대하여는 사람의 관점에서 본 외모와 조건을 강조하여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큰 준수한 소년”이라고 기록하였고(9:2), 그를 왕으로 세우면서도 장차 그로 인하여 백성들이 고통을 겪게 될 수 있음을 경고하였습니다(12:14-15). 반면에 다윗에 대하여는 사무엘이 엘리압의 외모를 보고 착각했던 장면과 대비하여(16:6), 하나님께서 보시는 중심에 초점을 두어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고 기록합니다(16:12). 사무엘은 직접 다윗을 찾아가 기름을 부었고(16:13), 다윗은 악령으로 고통받는 사울을 수금으로 섬기는 자로 소개됩니다(16:23). 이는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 가운데 참된 하나님의 통치가 회복될 것을 예고하는 장면입니다.
사울과 다윗은 모두 미천한 신분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사울은 농사꾼이었고(11:5), 다윗은 목동이었습니다(16:11). 그러나 기름 부음을 받은 이후 두 사람의 길은 전혀 달라졌습니다. 사울은 점점 자기를 높이는 자가 되었고, 회개할 줄 모르는 왕으로 변질되었습니다(15:12). 반면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이후에도 사울을 섬기며, 동시에 여전히 자신이 맡았던 목동의 일을 성실히 감당하였습니다(17:15). 더 나아가 그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중대한 죄를 범하였을 때에도, 나단 선지자의 책망 앞에서 즉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였습니다(삼하12:13).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민족으로 태어나 같은 출발선에 서 있었으나, 사울은 사람들의 뜻에 따라 세워진 왕이었고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워진 왕이었습니다. 처음은 같아 보여도, 그 결말은 전혀 달라질 수 있음을 두 사람의 삶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새가 “나이가 많아 늙은 사람”이었으며, 여덟 아들 가운데 장성한 세 아들이 사울을 따라 블레셋과의 싸움에 나갔다고 기록합니다(13). 이는 이새가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함과 동시에, 그의 가정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기록은 다윗이 어린 시절부터 자기중심적인 삶이 아니라, 공동체와 나라를 향한 책임의식을 배우며 자라났음을 암시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신 것은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선택이 아니라, 그가 양을 치던 시절 이전부터 그의 성장 전 과정을 은밀히 지켜보신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처음 기름 부음을 받고 사울에게 불려가 수금으로 그의 병을 치료하던 시기는, 아직 전쟁에 나갈 만큼 장성하지 못한 때였습니다(16:19-23). 그럼에도 그는 왕의 곁에 머물며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도 있었으나, 그러한 길을 선택하지 않고 다시 목동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17:15). 이는 그의 성품이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하는 삶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이 골리앗의 조롱을 들었을 때, 그것을 개인적인 모욕이나 군사적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말”로 분별하며 의분을 품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26).
물론 성경은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을 때 “여호와의 영이 크게 감동되니라”고 기록하여(16:13),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있었음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나 사울 또한 기름 부음을 받은 후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예언한 경험이 있었습니다(10:10). 이 차이는 결국 그릇의 문제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 받은 신앙 교육과 삶의 태도가, 하나님의 뜻을 담아낼 수 있는 겸손한 그릇을 준비하게 했음을 우리는 다윗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 재물과 결혼과 세금 면제라는 보상이 주어진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그 보상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고 되묻습니다(25-26). 이는 이 문제가 개인의 성공이나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감당해야 할 영적 문제임을 분명히 한 질문이었습니다. 지도자들과 군사들이 두려움 속에서 상황을 보상으로 해결하려 할 때, 어린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기준으로 사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같은 상황을 보고도 전혀 다른 판단과 행동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엘라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이 맞서 싸워야 할 진짜 적은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장수가 아니라, 이미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던 두려움이었습니다(19). 골리앗이 사십 일을 조석으로 나와 이스라엘을 조롱하였지만(16, 23), 이스라엘 백성들은 싸울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도망하기에 바빴습니다(24). 그러나 이새의 세 아들은 여전히 전장에 서 있었고(13), 이새는 늙고 연약한 몸으로 직접 싸울 수는 없었지만, 막내 다윗을 통해 형들을 격려하고 군량을 지원하며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17-19). 다윗은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여 진영으로 나아갔고(20), 그 자리에서 골리앗의 조롱을 듣고 분노하게 됩니다(23, 26).
성경은 이 전쟁을 단지 사울과 이스라엘의 전쟁으로 그리지 않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의 이야기로도 풀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갑자기 다윗 한 사람만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가족 전체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세우시고 사용하셨습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한 가족 전체를 부르시고 사용하셨습니다(창12:1). 한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명을 감당하기까지, 그 뒤에는 함께 기도하고 희생하며 동역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이 다윗을 소개할 때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새와 같이 자녀에게 신앙을 흘려보낼 때,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에서 다윗과 같은 사람을 세우십니다. 머리가 뜨거워지고 가슴이 뛰는 일시적인 감정이 기름 부음의 본질이 아닙니다. 내 신앙이 정체되지 않고, 자녀와 이웃에게 흘러가 하나님의 이름을 이어가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기름 부음의 역사입니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것을 보고 살아가지만, 믿음으로 살아가는 가정의 열매는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샬롬...
믿음의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그러한 환경안에 있음을 감사하고 가정과 내가 속한 어떤 공동체든지 믿음의 환경을 만들며 살아가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방향이 무엇인지 항상 여쭤보며 나의 환경들을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