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님의 댓글
온누리 작성일
샬롬 정수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순간에도 깨어 일 한시는 분이시며, 나와 항상 동행하시어 실패와 두려움으로 부터 담대함으로 나아가는 법을 깨우쳐 주시는 분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곧은 길로만 갈 것이며 , 어떤 고난과 유혹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들며 말씀 안에서 살겠습니다.

28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29 다윗이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하고
30 돌아서서 다른 사람을 향하여 전과 같이 말하매 백성이 전과 같이 대답하니라
31 어떤 사람이 다윗이 한 말을 듣고 그것을 사울에게 전하였으므로 사울이 다윗을 부른지라
32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하니
33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38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39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진 채, 창과 방패와 투구와 갑옷으로 중무장한 거인 골리앗을 향해 나아가는 다윗의 모습은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고 무모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40). 사울이 내어준 갑옷과 투구를 입어 보았다가 곧 벗어 버리고, 허리에 찼던 칼마저 내려놓은 그의 선택은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소년의 객기처럼 보였을 것입니다(38-39). 여섯 규빗 한 뼘에 이르는 거대한 체구, 놋 투구와 비늘 갑옷, 놋 창과 방패로 완전히 무장한 골리앗 앞에서(17:4-7), 아직 전쟁에 나서기에도 어린 다윗의 모습은 상식과 경험이라는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거대한 문제 앞에서 더 강한 무기와 더 확실한 조건을 요구하지만, 다윗은 그 모든 기대와 계산을 내려놓고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선택은 무모함이 아니라 분별이었습니다. 그는 사울의 갑옷과 투구를 입고서 “익숙하지 못하니이다”라고 말하며 그것들을 벗습니다(39). 이 말은 전쟁을 가볍게 여긴 표현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에 익숙하고 무엇에 익숙하지 않은지를 정확히 아는 고백이었습니다. 다윗은 전쟁터의 장비에는 익숙하지 않았으나, 들판에서 손에 익힌 물매에는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양을 지키는 목동으로서 사자와 곰이 양을 물어갈 때에 그 뒤를 따라가 쳐서 양을 건져내는 일을 반복해 왔습니다(34-35). 그 시간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광야의 시간이었지만, 다윗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실제로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두려움 앞에서 도망치는 법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맞서는 법을 배워 왔습니다.
사람들은 다윗의 현재 모습만을 보았습니다. 그의 연소함과 전쟁 경험의 부족, 눈에 띄는 무기의 부재만을 보았습니다. 큰형 엘리압은 동생의 마음을 오해하며 책망하였고(28), 사울은 왕으로서 현실적인 판단을 앞세워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고 말합니다(3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보지 못한 다윗의 과거를 보고 계셨습니다. 들판에서 반복된 실패와 성공, 두려움과 극복, 그리고 그 모든 순간마다 하나님을 찾았던 그의 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다윗의 담대함은 타고난 성격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했던 시간 속에서 길러진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고백은 경험적 신앙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라고 말합니다(37). 이 말 속에는 과장이 없고 자기 과시도 없습니다. 이미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며 드리는 고백일 뿐입니다. 다윗에게 있어 사자와 곰, 그리고 골리앗은 크기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모두 하나님 앞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막9:23), 다윗은 믿음의 한계를 스스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싸움이라면 그 결과 또한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믿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결과만을 기다리는 태도가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미 주신 것을 붙들고 나아갑니다(40). 그의 물매는 하루아침에 준비된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실패와 반복을 통해 손에 익혀진 도구였습니다. 처음부터 정확했을 리 없고, 처음부터 담대했을 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 속에서도 물매를 내려놓지 않았고, 그 과정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 왔습니다. 그러한 반복이 쌓여 결국 골리앗 앞에 설 수 있는 담대함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엘리압의 책망 뒤에는 분노보다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28). 골리앗 앞에서 아무도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어린 동생의 등장은 위험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위기의 순간마다 과거의 은혜를 잊고, 현실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형의 말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라고 말합니다(29). 그는 자신이 이 자리에 온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끄신 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골리앗의 조롱을 단순한 개인의 위협이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를 향한 모욕으로 받아들였습니다(26). 이 분별이 다윗을 행동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울 앞에서 다윗은 “그로 말미암아 낙심하지 말 것이라”고 말하며 오히려 왕을 위로합니다(32). 믿음은 낙심한 공동체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을 가집니다. 사울은 자신의 방식으로 다윗을 보호하려 했고, 왕의 갑옷을 입혀 안전을 보장하려 했습니다(38). 그러나 다윗은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초라해 보이는 물매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방식으로 싸우기를 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부끄러워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스스로 포기하게 됩니다.
다윗은 싸우기도 전에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 확신이었습니다. “할례 받지 않는 블레셋 사람”은 아무리 강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는 자이며, 반대로 연약해 보이는 자신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자라는 분명한 인식이 그의 마음을 붙들고 있었습니다(36). 두려움은 반복되는 실패를 통해 극복되지만, 참된 담대함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경험에서 나옵니다. 다윗은 그 경험을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각자의 ‘물매’를 주셨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손에 익히지 않으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마25:26). 작은 순종, 보잘것없는 자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빚으십니다. 다윗의 물매가 광야의 시간을 통해 준비되었듯이, 오늘 우리의 일상 속 성실함과 반복된 순종은 장차 공동체를 살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담대한 순종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패 속에서도 물매를 내려놓지 말아야 합니다. 반복되는 연약함 속에서도 말씀대로 살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의 실패는 버려짐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준비시키시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다윗이 들판에서 홀로 보냈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숨은 시간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고, 이미 내 손에 쥐어 주신 물매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것을 신뢰하며, 오늘도 손에 물매를 들고 믿음의 걸음을 이어가야 합니다.
샬롬 정수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순간에도 깨어 일 한시는 분이시며, 나와 항상 동행하시어 실패와 두려움으로 부터 담대함으로 나아가는 법을 깨우쳐 주시는 분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곧은 길로만 갈 것이며 , 어떤 고난과 유혹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들며 말씀 안에서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