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수) 사무엘상 22:1-23 / 무서우면서도 불쌍한 자 사울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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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1건 조회 37회 작성일 26-04-29 05:44

본문

 1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3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4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6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그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 나무 아래에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의 곁에 섰더니

 7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를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8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하니

 9 그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이르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는데

10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11 왕이 사람을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

12 사울이 이르되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13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에게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냐 하니

14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호위대장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15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하건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크고 작은 일에 관하여 아는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

16 왕이 이르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너와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

17 왕이 좌우의 호위병에게 이르되 돌아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이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18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19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20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21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알리매

22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23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

 

하나님을 떠난 사울의 모습은 점점 더 무서우면서도 동시에 깊이 불쌍한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정의와 공의의 상징이어야 할 통치자의 규가 아니라 단창이었고, 그는 그 단창을 통해 자신의 불안을 감추려 합니다(6). 율법 위에 서서 백성을 살펴야 할 왕이었으나, 그는 오히려 율법을 짓밟고 불법적인 심문을 통해 제사장들을 몰살할 만큼 잔혹한 권력을 휘두릅니다(18–19). 그러나 그러한 폭력적인 권세에도 불구하고 사울을 진심으로 따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8). 모든 정의의 혀는 침묵했고, 진실은 왜곡되었으며, 출세와 영달을 위해 사실을 비틀어 말하는 도엑과 같은 자의 혀에 의해 왕의 판단은 좌우되고 있었습니다(9–10). 모두를 향해 단창을 겨누고 있으면서도 사울의 마음에는 평안이 없었고, 에셀 나무 아래에 앉아 자신의 정통성과 권위를 과시하려 애쓸수록(6), 그 모습에서는 권력의 맛에 취해버린 한 인간의 추악함과 처절한 불쌍함만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뿐이었습니다.

본래 사울은 소를 끌며 농사를 짓던 순진한 청년이었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숨길 만큼 소극적이고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왕권을 지키기 위해 제사장 팔십오 명을 무참히 살해하는 탐욕에 눈먼 자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18). 사울은 권력의 자리를 붙들기 위해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을 택했습니다. 그는 신하들을 향해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고 부르며, 노골적으로 자기 지파 사람들을 요직에 앉히고 천부장과 백부장으로 삼아 자신을 위한 정치를 펼쳤습니다(7). 이는 왕을 요구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미리 경고하셨던 모습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왕은 백성의 밭과 포도원과 좋은 것을 빼앗아 자기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경고가 그대로 현실이 된 것입니다. 사울의 곁에는 많은 사람이 있는 듯 보였으나, 그들의 마음은 이미 떠나 있었고, 사울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라고 탄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8). 지도자의 통치력은 사람의 계산이나 편 가르기에서 나오지 않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사울은 재물과 자리로 사람을 묶어 두려 했으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는 지도자에게 남는 것은 분노와 고립뿐이었습니다.

성경은 사울의 측근들이며 같은 베냐민 지파 출신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이 이미 사울에게서 떠났음을 증언함으로써(8, 17), 왜 많은 백성들이 다윗에게로 몰려들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합니다. 다윗은 가드에서의 사건 이후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게 되자 아둘람 굴로 다시 도망하게 됩니다(1). 그러나 그곳은 단순한 은신처가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의 출발점이 됩니다. 도망자였던 다윗에게 형제들과 아버지의 온 집안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환난당한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그에게로 몰려들어 사백 명가량의 무리를 이루게 됩니다(2). 이 숫자는 장정만을 의미하므로, 가족들까지 포함한다면 훨씬 더 큰 공동체였을 것입니다. 이는 더 이상 다윗이 혼자 몸을 숨기며 도망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다윗은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고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나아갑니다(3). 모압은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에 있었으나 지리적으로 가까워 사울의 동향을 살피기에 유리했고, 무엇보다 다윗의 증조모 룻의 출신지라는 점에서 비교적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라고 기록함으로써, 다윗이 모압 왕의 묵인 아래 공동체를 이루며 하나의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암시합니다(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갓을 통해 다윗에게 그곳에 머물지 말고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십니다(5). 모압은 안전했고, 부모를 맡길 만큼 평안한 곳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안전에 안주하는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유다로 들어가라는 명령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다윗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유다로 들어간 다윗은 제사장 학살에서 살아남아 도망쳐 온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을 맞이하게 됩니다(20). 아비아달 제사장이 다윗과 동행하게 되면서, 다윗의 공동체는 단순한 도피 집단을 넘어 사울의 폭정에 맞서는 신정적 공동체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하게 됩니다. 다윗은 안전한 땅을 떠나 위험한 땅으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명령 속에서 자신의 경솔함을 깊이 돌아보게 되었고(22), 제사장을 품음으로써 한 나라의 왕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무게를 배워 가게 됩니다.

한편 사울은 다윗의 소문을 듣고 기브아 높은 곳 에셀 나무 아래에서 신하들을 대동한 채 무장하고 앉아 그의 행방을 묻습니다(6). 그러나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습니다. 토지와 재물과 요직을 받았던 자들이었지만, 다윗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7–8). 그때 에돔 사람 도엑이 나서서 다윗과 아히멜렉 사이에 있었던 일을 고발합니다(9). 그는 아히멜렉이 다윗을 위해 여호와께 묻고 음식과 골리앗의 칼을 주었다고 진술합니다(10). 이 말은 사실을 교묘히 조작한 말이었고, 사울은 이에 대한 어떠한 검증도 하지 않은 채 제사장들을 놉에서 불러들입니다.

사울은 율법이 요구하는 절차를 무시하고, 오직 도엑 한 사람의 말만을 증인 삼아 심문을 진행합니다. 그는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였느냐”고 묻는 순간 이미 반역의 죄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었습니다(13). 아히멜렉은 자신이 왕의 명령으로 여긴 상황에서 다윗을 도왔을 뿐임을 분명히 밝히며 충언하지만, 사울은 이를 반란의 변명으로 받아들입니다. 결국 그는 신하들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도엑을 시켜 제사장들을 학살하게 하고, 놉 성읍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 가축까지 모두 진멸하는 극악한 죄를 범합니다(18–19).

이 참극의 소식을 전해 들은 다윗은 살아남은 아비아달로부터 모든 사실을 듣고 “나의 탓이로다”라고 고백합니다(22). 이 고백은 자신의 말과 판단이 가져온 결과를 끝까지 짊어지겠다는 통절한 자기 인식이었습니다. 다윗은 제사장들의 죽음을 하나의 사건으로 정리하지 않았고, 정치적 계산이나 변명으로 자신을 보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고, 자신의 선택이 그 길로 이어졌음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사울은 모든 혼란과 위기를 다윗에게 돌리며 분노로 심판자의 자리에 서 있었고, 그 분노는 결국 무고한 피를 부르는 폭력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권력은 반드시 더 큰 희생을 요구하지만, 책임을 끌어안는 지도자는 고난 속에서도 공동체의 생명을 품게 됩니다. 사울은 끝내 그 자리를 이해하지 못했고, 다윗은 고난 속에서 그 자리를 배워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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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님의 댓글

정현 작성일

샬롬

나의 문제와 분노를 내가 해결하고자 할 때!
그것이 가능하다 여길 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분별이 불가능해집니다. 결국 어디로 가고있는지 방향도 보이지않게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붙들고 매일 묻고 매일 아뢰는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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