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화) 던진 창, 죽음의 화살로 돌아오다 / 안병찬 목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17회 작성일 26-05-19 04:21

본문

 1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2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3 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잡으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에게 중상을 입은지라 

 4 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

 5 무기를 든 자가 사울이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6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7 골짜기 저쪽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요단 건너쪽에 있는 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었음을 보고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러 거기에서 사니라

 8 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것을 보고

 9 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의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알리기 위하여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땅 사방에 보내고

10 그의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의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11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

12 모든 장사들이 일어나 밤새도록 달려가서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서 내려 가지고 야베스에 돌아가서 거기서 불사르고

13 그의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 나무 아래에 장사하고 칠 일 동안 금식하였더라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과 싸우며 남쪽 지역에 머무르고 있을 때, 사울은 블레셋과 대치하며 북쪽 지역인 길보아 산악지대 기슭, 곧 이스르엘 부근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29:1). 이스르엘은 나봇의 포도원으로도 잘 알려진 곳으로서, 토지가 비옥하고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넉넉하여 사람이 살아가기에 좋은 평야 지대였습니다(왕상 21:1). 블레셋과의 마지막 결전을 앞둔 이스르엘은, 어쩌면 사울이 평생 붙들고 싶어 했던 기름지고 풍요로운 삶의 상징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지역 출신인 아히노암이 다윗의 아내가 되었음을 기록함으로써, 결국 하나님께서 이 땅의 통치권을 누구에게 맡기셨는지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25:43). 사람이 아무리 손에 쥐려 하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한 줌의 흙조차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왕의 자리를 끝까지 놓지 않으려 하였던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채 자기 영광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그가 최후를 맞이한 이스르엘은 훗날 음녀요 바알 숭배자였던 이세벨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자리이기도 합니다(왕하 9:23). 성경은 장소를 통하여 사람의 역사를 증언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자기 이름을 세우려 할 때, 그가 서 있는 가장 기름진 자리조차 심판의 무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마침내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쳐서 길보아 산에서 그들을 도륙하였고, 사울의 인생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무너짐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1).

승기를 잡은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맹렬히 추격하였고, 마침내 사울의 세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가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2). 사울이 한때 꿈꾸었던 왕가의 영화는 세 아들의 죽음과 함께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이후 넬의 아들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워 마지막 불씨를 이어 보려 하였으나, 그마저도 레갑과 바아나의 손에 죽고 맙니다(삼하 2:8). 사람이 집을 세우려 하나 하나님께서 세우지 아니하시면 그 수고가 헛될 뿐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노래합니다(시 127:1). 한때 농부에 불과하였던 자신을 불러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그 은혜 위에 겸손히 서지 못한 사울의 인생은 결국 자기 손으로 세우려던 것을 자기 눈앞에서 잃어버리는 자리까지 내려가고 말았습니다.

생각할수록 사울의 몰락은 무겁고도 아픈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겼고,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기 체면을 더 중하게 여겼습니다. 그 교만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불순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자리에서 자라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낮아지지 않는 마음은 결국 자기 자신을 무너뜨리는 칼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육체의 만족과 자기 이름의 영광을 좇지 말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겸손과 성실로 주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내 욕망이 커질수록 하나님의 뜻은 멀어지고, 내 고집이 강해질수록 은혜의 길은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세 아들의 죽음을 뒤로한 채 도망하던 사울은 끝내 블레셋의 활 쏘는 자들에게 따라잡혔고, 그들이 쏜 화살에 맞아 크게 다치게 됩니다(3). 한때 전장에서 용맹을 떨치며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던 사울이 이제는 적의 화살 앞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가련한 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같은 시간 다윗은 남쪽에서 아말렉과 싸우고, 사울은 북쪽에서 블레셋과 싸우는 장면을 나란히 보여 줍니다. 이는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을 끝까지 미워하고 밀어내었던 사울 곁에는, 이제 그를 참으로 지켜 줄 자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들었던 사울의 창이, 마침내 자신에게 죽음의 화살로 돌아온 셈입니다(18:11).

중상을 입은 사울은 자기 무기를 든 자에게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희롱과 모욕을 당하기 전에 칼을 빼어 자신을 찌르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행하지 못하자, 사울은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4). 여호와를 아는 백성 가운데 자살은 매우 비극적인 종말로 제시됩니다.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가 스스로 목매어 죽은 장면이 이를 떠오르게 합니다(마 27:5).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한 사람의 마지막은, 육신의 죽음만이 아니라 관계의 파괴와 신앙의 황폐함까지 함께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울의 죽음 뒤에는 그의 아들들과 그와 함께한 자들의 죽음도 뒤따릅니다(5-6). 지도자 한 사람의 불순종은 결코 개인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그의 곁에 선 자들까지 함께 무너뜨리는 무거운 결과를 남기게 됩니다.

성경은 사울 곁에 있던 무기 든 자의 죽음을 기록하면서, 처음 사울의 무기 든 자로 섬겼던 사람이 다윗이었음을 조용히 떠올리게 합니다(16:21). 사울은 하나님께서 곁에 붙여 주신 충성스러운 사람을 시기심으로 밀어냈고, 자신을 지켜 줄 수 있는 가장 큰 은혜를 스스로 내쫓고 말았습니다. 잠언은 “자기의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 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화살이니라”라고 경고합니다(잠 25:18). 다른 사람을 해하려는 마음은 결국 자기 영혼을 먼저 파괴합니다. 시기와 미움은 마음속에서 자라다가 어느 날 창끝이 되고 화살이 됩니다. 다윗은 “그들이 급히 흐르는 물 같이 사라지게 하시며 겨누는 화살이 꺾임 같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시 58:7). 사람이 쏜 화살을 꺾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향한 원망과 시기를 품는 것은 죄입니다. 오래 묵힌 미움은 죄의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사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은 순식간에 온 땅에 퍼져 나갔습니다. 길보아 산기슭 가까운 이스르엘 골짜기에 살던 사람들과, 요단 건너편에 살던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패하였고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성읍을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은 그 비어 버린 성읍들에 들어가 거기 거주하였습니다(7). 지도자의 실패는 나라 전체의 흔들림으로 이어졌고, 한 사람의 몰락은 수많은 백성의 삶의 터전까지 빼앗기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도력이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지, 이 짧은 구절은 깊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갔다가, 길보아 산에 엎드러진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사울의 머리를 베고 갑옷을 벗겨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땅 사방에 보내어 자기 우상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알리게 하였습니다(9). 블레셋 사람들에게 사울의 머리와 갑옷은 단순한 전리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섬기는 신들이 여호와를 이긴 것처럼 선전하기 위한 상징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사울의 갑옷을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 못 박았습니다(10). 높아지려 하였던 자가 가장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높이 달린 것입니다. 교만의 끝은 영광이 아니라 수치입니다. 자기 이름을 세우려던 자는 결국 모든 사람 앞에서 치욕의 표지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 이 소식을 듣고 용사들이 밤새 걸어가 벧산 성벽에서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내려다가 장사하였습니다(11-12). 성경은 이 일을 담담하게 기록하지만, 그 안에는 오래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사울이 왕으로 세워지기 전, 길르앗 야베스를 침략하던 암몬 사람들을 쳐서 그들을 구원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울은 승리의 영광을 자기에게 돌리지 않고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라고 말하였습니다(11:13).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전 생애를 보실 때, 그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백성을 위해 행했던 그 한때의 선한 일을 잊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 일이 훗날 그의 장례를 준비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가져다가 불사르고, 그 뼈를 야베스의 에셀나무 아래 장사한 뒤 칠 일 동안 금식하였습니다(12-13). 왕좌를 놓지 않으려 그토록 몸부림치던 사람의 마지막이 몇 조각의 뼈로 남아 나무 아래 묻히는 장면은, 인생의 허무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사람이 움켜쥐고 있던 권세와 명예와 욕망은 결국 육체의 죽음 앞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사람이었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후손들이 기억할 나의 의로움은 무엇입니까. 내가 붙들었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며 살아낸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사울의 인생은 두려운 경고가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하였으나 끝까지 겸손하지 못하면 얼마나 비참한 자리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동시에 그의 장례를 위하여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움직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삶 속에 남겨 두신 은혜의 흔적이 얼마나 귀한지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높아지려 하기보다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 앞에 크게 보이는 인생보다 하나님 앞에 정직한 인생이 복됩니다. 누군가를 향해 던진 창이 언젠가 자기에게 죽음의 화살로 돌아올 수 있음을 기억하며, 시기와 미움과 교만을 버리고 겸손과 순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첨부파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새벽이슬묵상 목록
열람중
306
305
304
303
302
301
300
299
298
297
296
295
294
293
292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