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님의 댓글
정현 작성일
샬롬.
호세아를 볼 때마다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아 답답했고 이상했습니다.
말씀은 이해되는것이 아니라
수납해 두는 것이라는 목사님의 전달을 머리로는 듣고 가슴으로는 밀어둔 모양입니다.
호세아서를 묵상하는 시간동안 말씀의 수납을 위한 제 마음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3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4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5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6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7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11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오랜 세월 사마리아에서 통치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북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왕위에 머물렀던 왕 중 하나였으나, 오히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왕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그가 다스리던 시대는 외적으로는 번영의 절정과 같았습니다. 국력은 확장되었고, 경제적 풍요도 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신 그 시대의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번성의 이면에는 우상숭배와 영적 타락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시대 속에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고, 그 말씀으로 이스라엘의 상태를 드러내십니다(1).
물질적 풍요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강력한 시험이 됩니다. 부족할 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듯하다가도, 풍요를 누리게 되면 사람은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바로 그러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살면서도, 그 풍요의 근원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풍요를 지속시켜 줄 것이라 여기는 다른 대상들을 붙들었습니다. 비를 내리고 곡식을 자라게 한다고 믿었던 바알과, 삶의 안전과 번영을 보장한다고 여겼던 세속적 가치들이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였습니다. 그 결과 신앙의 타락은 곧 사회의 타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진실은 사라지고 정의는 무너졌으며, 사람들은 권모술수와 이익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회는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배반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향한 사랑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매우 충격적인 명령을 내리십니다.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음란한 자식들을 두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이 땅이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 가득하였음을 선지자의 삶으로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2). 하나님께서는 단지 말씀으로만 죄를 지적하지 않으시고, 선지자의 삶 전체를 통하여 그 죄의 본질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단순한 종교적 실수가 아니라, 남편을 버리고 다른 이를 따르는 음행과 같았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저버리고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은 영적 간음이었습니다.
호세아가 맞이한 고멜은 음란한 여인으로 제시됩니다.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 사랑에 머물지 못하고 계속해서 떠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관계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어떻게 행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남편이셨고, 이스라엘은 그분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르면서도 실제로는 다른 것을 의지하였습니다. 겉으로는 신앙을 유지하는 듯하였으나, 마음은 이미 하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상태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이시며, 자기 백성과의 관계를 거룩하게 여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호세아가 음란한 여인을 맞아 음란한 자식들을 낳게 되는 장면은 이스라엘의 죄가 한 세대의 문제가 아님을 드러냅니다. 우상숭배는 조상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죄였으며, 회개하지 않으면 자손에게까지 계속 이어질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2-4). 죄는 개인에 머물지 않고 가정과 공동체로 확장됩니다. 한 사람의 타협은 다음 세대의 기준이 되고, 한 세대의 불순종은 자녀들의 습관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이름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상태를 선포하십니다. 그 이름들에는 심판과 관계의 단절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죄를 죄로 다루시는 거룩하신 성품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피를 갚으시고 그들의 활을 꺾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4-5). 피는 생명을 의미하고, 활은 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활을 꺾으신다는 것은 그들이 의지하던 힘이 무너질 것을 뜻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조건을 신뢰하며 그것으로 미래를 보장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힘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외형적으로 강해 보였으나, 이미 그 중심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번영은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거두시고, 더 이상 내 백성이라 부르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6-9). 백성에게 가장 큰 복은 하나님께서 “너는 내 백성이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데 있습니다. 반대로 가장 큰 심판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기는 순간, 그는 이미 생명의 근원에서 멀어진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우상숭배의 본질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의지하는 데 있습니다. 그것이 물질이든, 권력이든, 사람의 인정이든, 하나님보다 더 마음을 두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곧 우상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노골적으로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 하여도, 여전히 세상의 방식과 유익을 따라 하나님을 뒤로 미루는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눈앞의 이익을 더 신뢰하고, 말씀보다 현실적인 계산을 더 앞세우는 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태도를 음란한 행동으로 보십니다. 겉으로 신앙을 유지하면서도 실제로는 다른 것에 의지하는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훼손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를 늘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심판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본문은 회복의 약속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질 것이며, 한때 내 백성이 아니라 불렸던 자들이 다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0). 또한 유다와 이스라엘이 함께 모여 한 지도자를 세우고 회복될 것을 약속하십니다(11).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은 멸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책망하시지만, 돌이키는 자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이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분명히 하십니다. 활이나 칼이나 전쟁이나 마병으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7).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더 강한 수단을 찾으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참된 회복은 조건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경고 앞에서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죄를 덮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마음속에 자리 잡은 우상이 무엇인지 살피고,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음행은 결국 생명과 힘을 꺾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욕망은 겉으로는 좋아 보일 수 있으나, 결국 영혼을 메마르게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번영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샬롬.
호세아를 볼 때마다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아 답답했고 이상했습니다.
말씀은 이해되는것이 아니라
수납해 두는 것이라는 목사님의 전달을 머리로는 듣고 가슴으로는 밀어둔 모양입니다.
호세아서를 묵상하는 시간동안 말씀의 수납을 위한 제 마음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