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민수기 22:36-23:12 / 백성에게 주신 약속의 신실함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1건 조회 23회 작성일 25-07-10 05:31

본문

36 발락은 발람이 온다 함을 듣고 모압 변경의 끝 아르논 가에 있는 성읍까지 가서 그를 영접하고

37 발락은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특별히 사람을 보내어 그대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냐 그대가 어찌 내게 오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어찌 그대를 높여 존귀하게 하지 못하겠느냐

38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말할 능력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

39 발람이 발락과 동행하여 기럇후솟에 이르러서는

40 발락이 소와 양을 잡아 발람과 그와 함께 한 고관들을 대접하였더라

41 아침에 발락이 발람과 함께 하고 그를 인도하여 바알의 산당에 오르매 발람이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 끝까지 보니라


【 23장 】


 1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제단 일곱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소서 하매

 2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준비한 후에 발락과 발람이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니라

 3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나는 저리로 가리이다 여호와께서 혹시 오셔서 나를 만나시리니 그가 내게 지시하시는 것은 다 당신에게 알리리이다 하고 언덕길로 가니

 4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시는지라 발람이 아뢰되 내가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렸나이다

 5 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시며 이르시되 발락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지니라

 6 그가 발락에게로 돌아간즉 발락과 모압의 모든 고관이 번제물 곁에 함께 섰더라

 7 발람이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쪽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8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9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10 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 사분의 일을 누가 능히 셀고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 하매

11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를 데려왔거늘 그대가 오히려 축복하였도다

12 발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



 

모압 왕 발락은 복술사 발람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모압 경계의 끝 아르논 가에 있는 성읍까지 가서 그를 영접합니다(36). 그리고 발람에게 “내가 특별히 사람을 보내어 그대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냐, 그대가 어찌 내게 오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어찌 그대를 높여 존귀하게 하지 못하겠느냐”고 말합니다(37). 왕이 직접 나와 영접하며 특별한 자로서 대접하고 존귀하게 해주겠다는 뜻을 다시 한번 확신시켜 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대접과 존귀함은 조건이 달린 것이었으며,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면”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습니다. 이처럼 과분한 대접은 오히려 사람의 정직한 마음을 굽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발락의 행동은 단순한 환영이 아니라 의도를 담은 기대와 압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왕의 환대는 발람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멸망시키고자 하는 발락의 간절한 소망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발람은 하나님의 뜻 앞에 철저히 순종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냅니다. 그는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말할 능력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라고 말합니다(38). 이는 단지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입술을 통해 말씀하실 때만 말하겠다는 순종의 다짐이자 선언입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죄로 인해 죽임을 받아야 할 자였으나, 나귀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목숨을 구한 자임을 깊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발락이 제시한 부귀와 존귀를 완곡하게 거절하고 있는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뜻에만 자신을 내어드리겠다는 자세로 서 있습니다. 발락은 왕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대우를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발람이 그것에 굴복하지 않자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했을 것입니다. 곧 발람이 사람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만을 전하려는 결심을 굽히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발락은 발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와 동행하며 기럇후솟에 이릅니다. 거기서 소와 양을 잡아 그를 극진히 대접합니다(39-40). 이는 외적인 호의와 접대의 모습이었지만, 실상은 발람의 의지를 꺾고 그의 마음을 흔들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특별한 목적이 담긴 환대는 공정한 판단을 흐리게 만들며, 진리를 굽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발람은 이러한 발락의 대접을 받으며 그가 감정적으로나 환경적으로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겠다는 결심을 지킵니다. 이처럼 먹고 누리는 일에 마음을 빼앗겨 굽은 길인 줄 알면서도 그 길을 가는 것은 곧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외적인 형통이 내면의 진실함을 훼손하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다음날 아침 발락은 발람을 바알의 산당으로 인도하여 거기서 이스라엘의 진 전체를 보게 합니다(41). 이는 발람이 이스라엘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며 강력한 저주를 퍼붓게 하려는 의도에서였습니다. 이에 발람은 발락에게 제단 일곱을 쌓고, 수송아지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도록 요청합니다(23:1).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거룩한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율법에 따라 드리는 정결한 예배가 아닌, 고대 근동 사회에서 행해지던 혼합된 주술적 제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제사에 응답하십니다. 이는 발람의 종교적 정결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속에서 모압 왕 발락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발람이라는 이방인 복술사조차도 주권적으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십니다.

발락은 발람의 지시에 따라 수송아지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고 번제를 드렸습니다(23:2). 이는 상당한 정성과 노력이 담긴 제사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으십니다. 외형적으로는 거대한 예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제사는 무의미한 행위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말씀하신 것은 제사의 응답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그를 사용하신 것이었습니다. 발람은 발락에게 “당신은 번제 곁에 서 있으라. 나는 혹시 여호와께서 내게 임하셔서 말씀하실지 모르니, 나아가 여호와를 만나보리이다”라고 말하고 혼자 언덕으로 올라갑니다(23:3). 이 장면은 발람이 하나님을 찾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경외하기보다 어떤 식으로든 메시지를 받아내려는 주술적 기대감에 불과했습니다.

모압 왕 발락은 제사를 드리며 기다렸지만, 그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기다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가 아니라, 자신이 부릴 수 있는 힘의 존재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알을 섬기던 그에게 하나님은 그저 문제를 해결할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예배가 주술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경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드리는 예배와 기도는 진정한 믿음의 행위가 아니며, 결코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도구로 여기는 기도는 아무리 정성스러워 보여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의 입을 통해 발락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라”(23:9). 이는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처럼 평범하게 섞여 살아갈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언약 백성으로서 독립적이고 구별된 정체성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고립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특별히 보호하고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발락의 바람과는 달리, 이스라엘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을 받을 민족이며,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홀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라는 약속의 성취이기도 합니다(창12:3).

또한 하나님께서는 발람을 통해 “누가 야곱의 티끌을 능히 세며, 이스라엘의 사방 사방을 능히 셀 수 있으랴”고 말씀하시며(23:10), 이스라엘의 수많은 후손과 번성은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발락의 입장에서 들으면 참으로 충격적인 예언이었습니다. 그는 저주를 원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번성과 형통의 축복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발람은 자신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음을 분명히 하며, “나는 하나님의 명을 어길 수 없으며,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다시금 강조합니다(23:12). 이처럼 하나님께서 친히 정하신 백성의 운명과 미래는 어떤 사람의 바람이나 음모로 바뀌지 않으며, 그분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첨부파일

댓글목록

해선짱님의 댓글

해선짱 작성일

샬롬!!  김해선입니다

♡ 깨달은점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일에는 세상도 그 누구도 막을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 실천하기

하나님의 선한도구로 쓰임받기를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새벽이슬묵상 목록
열람중
95
94
93
92
91
90
89
88
87
86
    강남교회  2025-06-26  76 
85
84
83
82
    강남교회  2025-06-19  91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