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목) 민수기 31:13-24 / 죄악의 불씨를 남겨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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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2건 조회 99회 작성일 25-07-31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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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의 지도자들이 다 진영 밖에 나가서 영접하다가

14 모세가 군대의 지휘관 곧 싸움에서 돌아온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에게 노하니라

15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자들을 다 살려두었느냐

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17 그러므로 아이들 중에서 남자는 다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여 사내를 아는 여자도 다 죽이고

18 남자와 동침하지 아니하여 사내를 알지 못하는 여자들은 다 너희를 위하여 살려둘 것이니라

19 너희는 이레 동안 진영 밖에 주둔하라 누구든지 살인자나 죽임을 당한 사체를 만진 자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몸을 깨끗하게 하고 너희의 포로도 깨끗하게 할 것이며

20 모든 의복과 가죽으로 만든 모든 것과 염소털로 만든 모든 것과 나무로 만든 모든 것을 다 깨끗하게 할지니라

21 제사장 엘르아살이 싸움에 나갔던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율법이니라

22 금, 은, 동, 철과 주석과 납 등의

23 불에 견딜 만한 모든 물건은 불을 지나게 하라 그리하면 깨끗하려니와 다만 정결하게 하는 물로 그것을 깨끗하게 할 것이며 불에 견디지 못할 모든 것은 물을 지나게 할 것이니라

24 너희는 일곱째 날에 옷을 빨아서 깨끗하게 한 후에 진영에 들어올지니라


 

이스라엘은 외형적으로는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이는 영적으로 불완전한 승리를 의미하며, 죄악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멸을 명령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디안의 부녀들을 사로잡아왔습니다. 이에 모세는 "너희가 여자들을 다 살려 두었느냐"며 진노합니다(15).

미디안의 여인들은 발람의 꾀에 따라 이스라엘을 음행과 우상숭배에 빠지도록 한 바락의 도구였습니다. 모세는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고 하여, 이 여인들을 살려두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16).

고대의 정복전쟁에서 승자는 여인과 아이들을 포함한 노략물을 차지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단순한 정복전쟁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회복하기 위한 영적인 전쟁이었습니다. 음행과 죄악의 씨를 살려두는 것은 관용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여전히 죄에 대한 미련이 남았음을 뜻합니다.

이는 전쟁을 지휘한 군대 지휘관들, 즉 천부장과 백부장들의 책임이었습니다(14). 발람의 계략이 통했던 것은 모압과 미디안 여인들의 적극적인 유혹 때문이었습니다. 바알브올의 사건과 관련된 모든 음행과 우상숭배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해야만 전쟁이 진정으로 끝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죄에 대한 태도도 이와 같습니다. 죄를 완전히 청산하지 않고, 단지 발등의 불만 끄려는 회개는 결국 더 큰 죄악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죄의 여지를 남겨두었다면, 그것은 참된 회개가 아니며, 그런 승리도 진정한 승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불순종으로 남겨진 죄악의 불씨는 결국 이스라엘의 발목을 잡고 괴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진멸하지 못하고 여인들과 그 후손들을 남겨둔 것은, 사사시대에 이르러 미디안이 다시 세력을 규합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씨앗이 됩니다(삿 6-8장). 히브리서 기자는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라"고 경고합니다(히 12:15-17).

모세는 아이들 중에서 남자 아이들은 모두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여 사내를 아는 여자도 다 죽이도록 명령합니다. 그러나 사내를 알지 못한 여인들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살려두도록 합니다(17-18). 이 명령은 잔인하게 보일 수 있지만,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엄중하며, 그만큼 죄의 결과는 무겁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동시에 이 명령은 하나님의 긍휼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죄와 상관없는 자에게는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내를 알지 못한 여인들은 이스라엘 안에서 다시 공동체를 이루는 일원이 될 수 있도록 허락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완전한 죄의 해결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이는 죄에 대해 단절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이스라엘의 군사들은 승리 이후에도 부정한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은 승리라도, 생명을 해치는 일은 창조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비극이자 부정함으로 간주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인한 자나 시체를 만진 자를 부정하다고 판정하시고, 이레 동안 진영 밖에서 주둔하게 하셨습니다(19). 이들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정결예식을 행하여야 했습니다.

이 정결의 과정은 단지 육체의 정결을 넘어서, 영적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섰음을 자각하게 하는 훈련이기도 했습니다. 셋째 날은 자신의 죄를 자각하는 시점이며, 일곱째 날은 그것을 해결받는 완성의 날이었습니다. 죄는 단순히 회피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와 정결함은 의도적인 훈련과 순종을 요구합니다.

제사장 엘르아살은 전쟁에서 노획한 금, 은, 동, 철, 주석과 같은 불에 견딜만한 물건들을 모두 불을 지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21-22). 이것은 부정하게 된 모든 물건을 거룩하게 다시 회복시키는 절차였습니다. 그러나 불로만 정결케 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정결하게 하는 물"로 씻어야 했습니다(23). 이 물은 붉은 암송아지를 태운 재를 섞어 만든 물로서, 피 흘림 없이는 정결함이 없다는 속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민 19:9).

전리품에 대한 정결 예식은 단지 소유권 이전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이들의 내면과 삶이 하나님 앞에 정결함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유익을 취하더라도 그것이 죄의 오염으로부터 정결케 되어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될 수 있음을 교훈합니다.

일곱째 날, 모든 군사들은 옷을 빨아 깨끗하게 한 후 진영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24). 이는 공동체 안에서 다시 거룩한 자로 인정받았다는 상징이며, 하나님 앞에 정결한 백성으로 서는 과정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옷을 빨았다는 것은 외적인 행위 이상의 내면의 새로움을 상징합니다. 구약에서 옷은 신분과 상태를 상징하므로, 옷을 빠는 행위는 죄로 더럽혀진 과거를 벗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서는 고백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며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하노라"고 하였습니다(고후 11:2).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정결한 신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하며, 죄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결은 단순한 금욕적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에 합당하게 서기 위한 거룩한 몸과 마음의 태도입니다.

죄의 불씨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방치하면 결국 공동체 전체를 삼키는 불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의 불씨를 철저히 살펴야 하며, 그것을 완전히 끊어내고 정결한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하나님이 거하실 성소 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의 거룩함은 이처럼 끊임없는 정결의 실천에서 시작됩니다. 죄와 타협하지 않기로 작정하는 그 순간, 우리는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거룩한 존재로 회복되는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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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선짱님의 댓글

해선짱 작성일

샬롬!!  김해선입니다

♡ 깨달은점

 죄악의 불씨는 결국 공동체와 자신을 넘어뜨리게 되기에  내면의 잠재에 남아있는 죄악을 완전히 뿌리 뽑아야함을 깨닫습니다
 

♤ 실천하기

죄의 불씨를 완전히 태우며 인내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가 되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강남교회님의 댓글

강남교회 작성일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가치관과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맹종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순종이란 덮어놓고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전제로 합니다. 이는 인격적이고 이성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온전한 순종이 곧 하나님의 역사로 인한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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