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님의 댓글
정현 작성일
샬롬 이정현입니다.
깨달은점---)
나 이정현의 이름은 그냥 불러지는 이름이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이름입니다.
도덕적이기만 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걸맞는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실천하기---)
내 마음만 바라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게 기도하겠습니다.
나의 기준의 경계를 하나씩 없애가겠습니다.
28 이에 모세가 그들에 대하여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수령들에게 명령하니라
29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만일 각각 무장하고 너희와 함께 요단을 건너가서 여호와 앞에서 싸워서 그 땅이 너희 앞에 항복하기에 이르면 길르앗 땅을 그들의 소유로 줄 것이니라
30 그러나 만일 그들이 너희와 함께 무장하고 건너지 아니하면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너희와 함께 땅을 소유할 것이니라
31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행할 것이라
32 우리가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가나안 땅에 건너가서 요단 이쪽을 우리가 소유할 기업이 되게 하리이다
33 모세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과 요셉의 아들 므낫세 반 지파에게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나라와 바산 왕 옥의 나라를 주되 곧 그 땅과 그 경내의 성읍들과 그 성읍들의 사방 땅을 그들에게 주매
34 갓 자손은 디본과 아다롯과 아로엘과
35 아다롯소반과 야셀과 욕브하와
36 벧니므라와 벧하란들의 견고한 성읍을 건축하였고 또 양을 위하여 우리를 지었으며
37 르우벤 자손은 헤스본과 엘르알레와 기랴다임과
38 느보와 바알므온들을 건축하고 그 이름을 바꾸었고 또 십마를 건축하고 건축한 성읍들에 새 이름을 주었고
39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자손은 가서 길르앗을 쳐서 빼앗고 거기 있는 아모리인을 쫓아내매
40 모세가 길르앗을 므낫세의 아들 마길에게 주매 그가 거기 거주하였고
41 므낫세의 아들 야일은 가서 그 촌락들을 빼앗고 하봇야일이라 불렀으며
42 노바는 가서 그낫과 그 마을들을 빼앗고 자기 이름을 따라서 노바라 불렀더라
르우벤과 갓 자손이 하나님 앞에서 드린 서원은 단순히 개인적인 약속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신중한 결단이었습니다. 이를 들은 모세는 그들이 한 약속이 공동체 안에서 명확히 증거되도록 제사장 엘르아살과 여호수아, 그리고 각 지파의 수령들 앞에서 다시 한 번 그 내용을 확인하도록 합니다(28-30). 이는 단지 행정적 확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계승할 다음 세대 지도자들이 그 약속을 기억하고 지켜야 할 책임을 공유하도록 한 조치였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 사명을 순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더 이상 가나안 입성의 지도자가 아니며, 이제 하나님의 약속을 완수할 책임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넘겨진 것입니다.
그렇기에 르우벤과 갓 자손이 단지 모세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전체 공동체 앞에서 맹세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는 지도자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의 공공성과 진정성을 드러내는 행위였습니다. 이어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무장하고 너희와 함께 요단을 건너가서 여호와 앞에서 싸워 그 땅이 너희 앞에 항복하기에 이르면 길르앗 땅을 그들의 소유로 줄 것이니라. 그러나 만일 그들이 무장하고 건너지 아니하면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너희와 함께 땅을 소유할 것이라”(29-30). 이 말씀은 언뜻 보기에는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단을 건너지 않아도 결국은 가나안 땅의 분배 대상이 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건은 자칫 르우벤과 갓 자손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것처럼 비춰질 수 있습니다. 희생 없이도 땅을 받을 수 있다면 다른 지파에게는 불공평한 처사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결정은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업은 인간의 공로나 기여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따라 분배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설령 르우벤과 갓 자손이 미흡한 신앙적 결단을 보였다 할지라도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약속의 땅에 참여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경쟁의 원리가 아니라, 은혜의 원리로 운영되는 곳입니다. 주권적으로 택하신 백성은 누구든지 그분의 자비와 은혜 안에서 기업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말씀은 공동체의 하나됨을 위한 전략적 고려이기도 했습니다. 만일 르우벤과 갓 자손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나안 땅의 분배에서 제외되었다면, 공동체는 큰 분열의 위기를 맞게 되었을 것입니다. 분열은 공동체의 가장 큰 위협이며, 하나님은 공동체의 연합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단지 각 지파의 이익을 좇는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세워진 언약 공동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합당하지 않아 보이는 결정이라도 공동체 전체의 연합을 위해 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르우벤과 갓 자손은 다시 한 번 하나님과 공동체 앞에서 자신들의 결단을 확증합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행할 것이라”(31). 이는 단순한 약속의 반복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한 지체로서 그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표현이었습니다. 신앙 공동체는 하나의 몸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4-5). 공동체 안에서는 누구도 스스로의 기여를 절대화해서는 안 됩니다. 나만 중요하고 나만 헌신하고 있다는 생각은 결국 하나님의 뜻과 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을 지체로 세우시고, 그 자리에 맞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이 했는가가 아니라, 각자가 주어진 자리를 성실하게 감당하는가입니다.
이후 요단 동편의 땅은 르우벤과 갓 자손뿐만 아니라 므낫세 반 지파에게도 분배됩니다(33). 흥미로운 점은, 므낫세 지파는 처음부터 요단 동편의 땅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분배가 단순히 요청과 기여에만 따라 이뤄지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은혜는 요청보다 앞서고,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구하지 않은 복도 예비해두십니다. 므낫세 지파는 요단 동편 정복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하나님은 그들의 수고를 귀하게 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분배는 철저히 은혜의 원리 위에 세워져 있으며, 우리는 그 은혜를 신뢰하고 감격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요단 동편의 세 지파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합니다. 그들은 아이들을 위해 성읍을 건설하고, 가축을 위한 우리를 마련합니다. 이 모습만 보면 처음에 자신들의 안위를 우선시하며 "먼저 정착 후 헌신"을 주장했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은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헌신을 미루기 위한 정착이었지만, 이제는 헌신을 감당하기 위한 준비로서 삶의 기반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똑같은 외형일지라도, 동기가 달라지면 전혀 다른 영적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하나님은 행위보다 중심을 보십니다. 삶의 정비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준비입니다.
그들은 또한 점령한 지역에 새 이름을 붙입니다(38). 이방신의 이름으로 불리던 성읍들을 다른 이름으로 바꾸며, 그 땅이 이제 하나님의 백성의 소유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단지 지리적 재정비가 아니라, 정체성과 방향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겠다는 결단이 이름을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의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서 있는 그 자리, 내가 맡은 그 일터와 공동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새롭게 정의되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져야 합니다.
복음은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단지 생존을 위한 삶을 넘어, 복음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맡겨진 사명을 위해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지, 그 사명을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있으며 또 무엇을 세워가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준비된 자에게, 그리고 믿음으로 그 길을 걷는 자에게 임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 안에서 세워진 삶은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오늘 내가 헌신하고 있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샬롬 이정현입니다.
깨달은점---)
나 이정현의 이름은 그냥 불러지는 이름이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이름입니다.
도덕적이기만 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걸맞는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실천하기---)
내 마음만 바라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게 기도하겠습니다.
나의 기준의 경계를 하나씩 없애가겠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역사의 현장에서 늘 이름이 기록되는 영광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냥 불러지는 이름이 아니라 특별한 목적 안에서 인도하심과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이름이 될 것입니다. 지금 이 결단이 변치 않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