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수) 여호수아 2:1-14 / 구원의 실상이 되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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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4건 조회 130회 작성일 25-11-05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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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2 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중의 몇 사람이 이 땅을 정탐하러 이리로 들어왔나이다

 3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왔느니라

 4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5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잡으리라 하였으나

 6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7 그 사람들은 요단 나루터까지 그들을 쫓아갔고 그들을 뒤쫓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8 또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12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13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14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요단강 건너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리고 성을 향하여 정탐꾼 두 사람을 보냅니다. 그들은 싯딤에서 출발하여 여리고 성에 들어가 기생 라합의 집에 유숙하게 되었습니다(1). 그러나 성경은 정탐꾼들의 치밀한 활동이나 전략보다, 곧바로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땅을 엿보러 밤에 이리로 들어왔느니라”는 소식이 여리고 왕에게 전해지고, 왕은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정탐꾼들을 끌어내라고 명령합니다(2-3). 

성으로 둘러싸인 견고한 사회에서 낯선 이방인의 존재는 금세 드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탐꾼들이 여리고 사람처럼 위장했을 가능성도 충분했으나, 성경은 그들의 정체가 너무나 쉽게 발각된 것으로 묘사합니다. 이는 마치 정탐꾼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보일 수 있으나, 사실상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보여주시는 장치였습니다. 전쟁의 승패와 약속의 성취가 인간의 지혜나 전략에 달려 있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복선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점령한 것은 결코 인간의 정탐과 전술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 때문임을 미리 알려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상황 인식이나 정보의 많고 적음에 좌우되지 않고,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신뢰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내 삶의 승리에 대한 가장 확실한 복선은 내가 지금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여리고 왕이 보낸 사람들에게 라합은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어디서 왔는지는 알지 못하고, 성문이 닫힐 즈음에 나갔으니 빨리 따라가면 그들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4-5). 그러나 사실 라합은 정탐꾼들을 이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 사이에 숨겨 두었습니다(6). 겉으로는 여리고 왕에게 충성하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정탐꾼들을 보호한 것입니다. 그녀의 행위는 당시로서는 명백한 반역이었습니다. 민족을 배신한 행위요, 발각되면 죽음에 이르는 중대한 죄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행동을 믿음으로 기록합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선택이 단순한 민족 배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결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리고는 우상 숭배와 음행으로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미 멸망이 예정된 성이었고, 하나님을 배반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라합의 선택은 죄악에 동참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살기를 택한 신앙의 결단이었습니다. 그녀의 선택은 배신이 아니라 구원을 향한 용기였습니다.

라합은 또한 하나님의 능력과 행하신 일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라고 고백합니다(11). 홍해가 갈라지고, 애굽의 군대가 멸망한 사건, 요단 동편 아모리 족속의 왕들을 이스라엘이 물리쳤다는 사실은 여리고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10). 그러나 그 소문 앞에서 믿음으로 반응한 사람은 라합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모두가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지만, 두려움이 믿음으로 이어진 사람은 라합뿐이었습니다. 라합이 기생이었다는 사실은 오히려 그녀가 소문의 중심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들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결단에 이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라합은 다른 이들과 달리 그 소문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았고, 그분만이 참된 구원자임을 알았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단순한 감정적 충동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믿음으로 준비된 자를 사용하십니다.

정탐꾼들을 지켜준 라합은 그 대가로 정탐꾼들에게 자신의 목숨뿐 아니라 가족들의 생명까지도 구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녀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긍휼히 대우하라”고 간청합니다(12-13). 그녀의 요청은 어쩌면 매우 당돌해 보입니다. 자신만 아니라 가족 전체의 생명까지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큰 부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하나님의 이름을 알았고, 그 이름이 구원의 증표가 될 수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이름 자체가 자신과 가족을 살리는 능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을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정탐꾼들은 라합의 요청을 받아들이며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하리라”고 맹세합니다(14).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 땅을 그들에게 주실 때,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것을 언약했습니다.

라합과 정탐꾼들의 언약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물질적 증표나 보이는 보증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약속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어졌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그들의 구원의 보증이었고, 그분의 신실하심이 곧 언약의 실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구원과 영생에 대하여 눈에 보이는 증거와 확실한 보장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보이는 증거로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라합은 그 믿음을 소유했기에,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습니다. 반면, 여리고 성의 다른 사람들은 동일한 소문을 들었으나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 차이가 구원과 멸망을 가르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지혜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주어집니다. 정탐꾼들의 발각조차 하나님의 섭리였듯이, 라합의 믿음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준비된 것이었습니다. 라합은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었고, 그 이름 안에서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의탁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구원 또한 동일합니다. 구원의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있습니다.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 이 말씀처럼 오직 하나님의 이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우리의 구원의 표징이자 보증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라합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를 요구하기보다, 하나님의 이름만으로 충분히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나 한 사람의 믿음의 선택이 나의 가정과 공동체를 살리는 은혜의 길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라합의 믿음이 그녀의 가족을 구원으로 이끈 것처럼, 우리의 믿음 또한 사랑하는 이들의 구원을 향한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며, 사랑하는 이들의 구원을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곧 구원의 실상임을 확신하며, 그 믿음 위에 굳게 서기를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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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건축학개론님의 댓글

건축학개론 작성일

묵상: 여호수아 2장은 정복 전쟁 서사의 정중앙에서 매우 이질적인 장면을 펼쳐 보입니다.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로 들어가기 전 여호수아는 두 정탐꾼을 은밀히 보내 성을 정탐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곳에 찾아오시는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반응해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의 징표를 주시는지를 묵상하려 합니다.( 우리도 라합의 집처럼 스스로 부끄러운 과거와 현재를 숨기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두려움을 넘어서 믿음으로 고백하는 라합처럼 우리도 신앙의 결단을 드려야 합니다)

강남교회님의 댓글의 댓글

강남교회 작성일

두 정탐꾼, 우리는 두 정탐꾼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를 보는 것입니다. 정탐꾼들의 보고는 그들이 자신의 눈으로 본 여리고의 상황을 보고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보고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정현님의 댓글

정현 작성일

샬롬.

깨달은점---)
매일 매일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아서.  그것이 반복된다고 그것이 똑같다고 여길때도 있었습니다.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래서 변하지않습니다. 똑 같습니다.

매일매일 같은  말씀이기에.
같은걸 느끼고 깨닫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주권.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신뢰하는 나의 마음의 신뢰도가  커갑니다.
그래서 행복하고 좋고 기쁘고 감사합니다.

실천하기---)
하나님의 은혜를 느껴가길 기도하며 기다리겠습니다.
우리딸에게 은혜를 강요하지않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은혜만 넘치길 기대하지 않겠습니다.

먼저, 기도하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하겠습니다.

강남교회님의 댓글의 댓글

강남교회 작성일

말씀은 신비롭습니다. 한 발 떨어져서 보면 그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갈 수록 내 마음을 속속들이 아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말씀묵상 훈련을 매일 하도록 한 것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성경 속에만 기록된 지식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내 삶에 실제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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