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민수기 11:1-15 / 백성의 불평과 모세의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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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45회 작성일 25-05-30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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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2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3 그 곳 이름을 다베라라 불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까닭이었더라

 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7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8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9 밤에 이슬이 진영에 내릴 때에 만나도 함께 내렸더라

10 백성의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11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12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13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14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15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눈이 되시고 귀가 되셨으며, 언약궤로 앞서가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며 친히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광야 지형에 능하고 진을 치는 일에 전문가인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칠지를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라”며 동행을 간청합니다(10:31). 물론 이는 죄는 아닙니다. 하지만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공동체 안에서 사람을 의지하려 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시작이 됩니다. 지도자가 하나님보다 사람의 도움에 기대려 할 때, 공동체 내부에는 혼란이 생기고 방향을 잃게 됩니다. 호밥에게 눈이 되어달라는 요청은 공동체 내 불평과 불만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시내산에서의 1년은 평안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진을 치고 행진하였으며, 규례에 따라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중심이 되는 순간부터 이스라엘은 곧 불평과 혼란 속으로 빠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선한 목적을 두시고 이스라엘을 이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탐욕이 그 틈을 타면서, 백성들은 모세와 하나님을 향해 악한 말로 원망하기 시작합니다(1). 

이 원망의 시작은 가장 연약한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성경은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라고 밝힙니다(4). 이들은 이방인으로, 비록 할례를 받고 유월절에 참여하였고 이스라엘 공동체와 동행하였지만, 여호와 신앙의 깊은 뿌리가 없었습니다. 신앙적 기반이 약한 이들로부터 시작된 불평은 이내 온 이스라엘에게 퍼졌습니다. 불만은 언제나 가장 약한 신앙으로부터 시작되어 공동체 전체를 흔듭니다.

이처럼 공동체의 균열은 지도자의 잘못된 선택, 방향감각의 상실, 영적 교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사탄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들어와 믿음이 약한 자에게 불만을 심고, 이를 통해 전체 공동체를 혼란으로 이끕니다. 모세는 호밥에게 도움을 청함으로써 지도자로서의 위엄을 세우려 했지만, 그 순간 공동체는 하나님의 질서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원망을 들으시고 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진영 끝에 불을 내려 심판하십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난다”는 말씀의 실현입니다(롬 1:18).

지금까지 모세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구로 철저히 순종하며 이스라엘을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그 역시 인간적 판단과 지도자의 위세를 앞세웠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지하고 싶었던 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지도자의 작은 교만은 공동체 전체에 파장을 일으킵니다. 그렇게 시작된 균열은 연약한 이방인을 통해 번져가고, 결국 이스라엘 전체가 원망의 공동체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광야의 밤, 추위 가운데에서 백성을 보호하던 여호와의 불은 이제 징계의 도구로 바뀌어 진영을 사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긍휼이 많으신 분이셨습니다. 진영 끝만을 사르심으로 경고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 불의 의미를 경외함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광야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장막 문 앞에서 울기 시작합니다(10). 장막 문은 성막이 바라보이는 자리로, 하나님의 임재가 보이는 자리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쁨과 감사의 찬양이 흘러나와야 할 그 자리에서, 백성들은 탐욕이 채워지지 않음에 대한 원망으로 절망의 눈물을 흘립니다.

애굽에서는 고된 노동을 했지만 고기와 생선, 오이와 마늘 같은 야채는 얻을 수 있었습니다(5). 지금 그들은 만나밖에 없고, 만나로는 기운을 낼 수 없다며 불평합니다(6). 하나님께서 밤마다 내리시는 만나를 맷돌에 갈고 절구에 찧고 가마에 삶아 과자로 만들어 먹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7-9). 그들의 불평은 단순한 식욕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누리는 절제된 자유보다, 애굽의 강제노동 아래서 맛보던 쾌락을 그리워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보다 이 세상의 풍요와 향락을 더 사모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말씀으로 주시는 자유보다 세상의 욕망을 쫓기 쉽습니다. 현실의 쾌락이 더 실감나고 천국은 실체 없는 소망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속 탐욕이 하나님을 배반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시 10:3).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음성보다 이방인들의 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구름기둥이나 불기둥, 언약궤가 아니라 사람의 말이 방향이 되어버렸습니다. 성막이 보이는 장막 문 앞에서 울고 있는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죽이려 광야로 이끌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사랑의 인도자가 아니라 무책임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무너지고, 먹을 것과 마실 것 앞에 신앙은 시험에 듭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해야 할 자리가, 이제는 탐욕이 채워지지 않음에 대한 분노의 자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모세도 실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탄식하며 불만을 쏟아냅니다. “내가 그들을 낳았습니까? 어찌 나에게 이들을 품으라 하십니까?”(12). 지도자로서의 부담은 감당할 수 없는 짐이 되었고, 고기마저 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모세는 좌절합니다.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라는 절규는(13),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지도자의 통곡이었습니다. 모세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며, 차라리 지금 죽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호소합니다(15). 지도자의 탈진, 영적 한계의 절규입니다. 그러나 이 절규는 하나님께서 새롭게 시작하시는 신호가 됩니다.

모세는 처음부터 지도자의 자리를 원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억지로 순종했지만, 백성들의 노예근성과 끝없는 불평 앞에서 지쳐갔습니다. 이제 그는 그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니 하나님께서 책임져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바로 이 고백이,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하는 자리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자, 절망 속에서 도움을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새롭게 말씀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엘리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갈멜산에서는 담대했지만, 광야에서 죽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로뎀나무 아래에서 무너진 그는 자신의 무능을 고백했고,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모세 역시 그랬습니다. 완전히 무너진 지도자의 모습은 비극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다시 일하십니다. 자신의 한계를 깨달은 자만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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