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목) 갈라디아서 2:11-21 / 율법으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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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13회 작성일 25-09-04 05:27

본문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바울은 안디옥에서 있었던 한 사건을 통해 복음의 본질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 사건은 베드로가 안디옥을 방문했을 때 벌어졌습니다. 처음에 베드로는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온 할례자들이 도착하자, 베드로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 이방인들과의 식사를 중단했습니다(12).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과 전통에 따라 이방인과의 식사를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유대인 사회에서는 할례받지 않은 자를 종교적으로 불결한 자로 간주했고, 그들과 식탁 교제를 나누는 것은 자신도 부정해지는 행위라고 여겼습니다. 베드로 역시 이전에는 이런 전통을 지키던 사람이었지만,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고넬료 사건을 통해 이방인도 차별 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람들의 시선과 비난이 두려워 이방인과의 교제를 피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행동을 매우 심각하게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나 사적인 행동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와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베드로를 향해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책망했습니다.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14). 이 말 속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즉, 베드로가 실제로는 이방인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였으면서도, 유대인들 앞에서는 마치 이방인이 유대인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듯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이중적인 태도, 곧 외식이었습니다.

바울은 베드로의 행동이 복음의 진리에서 벗어난 것이며, 공동체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험한 사례라고 판단했습니다. 지도자가 보여주는 외식된 모습은 다른 성도들에게 잘못된 신앙의 모델이 될 수 있고, 결국 복음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특히 이 사건에서는 바나바까지도 베드로의 행동에 영향을 받아 함께 외식하게 되었습니다(13). 이것이 바울이 공개적으로 책망한 이유였습니다. 사적인 자리에서 은밀히 지적할 수 있었지만, 사건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벌어졌고, 그 영향이 공동체 전반에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공개적인 책망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바울의 목적은 베드로를 망신 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고 모든 성도가 올바른 진리 위에 서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종종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을 의식하며 신앙생활을 할 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식사기도를 주저하는 것, 불신자들 앞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것, 옳고 그름을 알면서도 관계가 깨어질까 두려워 거절하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복음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태도는 베드로가 보여준 외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사람들의 눈에 좋아 보이는 신앙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를 삶으로 드러내는 신앙입니다.

바울은 이 사건을 계기로 복음의 핵심을 다시 선포합니다. 그는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었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라고 말합니다(16). 이것은 단순히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 문제를 넘어, 구원의 본질에 대한 선언입니다.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법이지만, 사람은 그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습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거울과 같아서,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서게 하지만, 율법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만일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결국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하며, 율법주의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당시 유대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 할례나 율법 준수 같은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주장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바울은 또 다른 중요한 선언을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0). 이 고백은 그리스도인의 존재와 삶의 근본 변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율법에 대해 죽은 자로 여겼습니다. 율법이 더 이상 자신을 규정하거나 지배하지 못하며, 그는 이제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는 것은, 나의 생각과 계획, 말과 행동이 그분의 주권 아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조항을 지키는 형식적인 신앙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에 반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주는 자유이며, 참된 순종입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라고 단언합니다(21). 이는 구원의 유일한 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있음을 분명히 하는 선언입니다. 만약 인간이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불필요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대속이 우리를 의롭게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깊이 점검하게 합니다. 나는 혹시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에 매여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 삶 속에서 율법적 기준을 들이대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하고 있지는 않은가. 복음 안에서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스스로를 규제하는 율법의 틀 속에 가두고 있지는 않은가. 바울은 우리에게, 율법이 아니라 은혜로,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사람들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 앞에서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복음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삶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세우는 삶입니다. 그것은 베드로처럼 외식하며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삶이 아니라, 진리 위에 굳게 서서 사랑과 진실로 행하는 삶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복음의 본질을 붙들고, 그 은혜 안에서 담대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로서, 나의 옛사람은 죽고,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는 사실을 날마다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의 길이며, 율법이 아닌 은혜로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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